고기의 깊은 맛 살린 '영국味'

남녀 사이에서 ‘작업’의 첫 단계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실연을 당한 사람은 흔히 폭식으로 마음을 달랜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식욕과 성욕은 확실히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 같다.

그 유명한 카사노바가 여자 이상으로 좋아했던 것이 바로 맛있는 음식들이다. 18세기 유럽 각지를 떠돌아다닌 그의 삶은 사랑의 모험이면서 동시에 평생에 걸친 미식 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출신의 작가 루트 봄보쉬는 그의 행적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카사노바의 맛있는 유혹’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는 그 동안 ‘호색한’으로만 알려져 있던 카사노바의 또 다른 면모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1725년 4월2일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성직자나 군인, 바이올리니스트 등을 꿈꾸었다. 그러나 여성과의 추문으로 투옥되고 1756년 탈옥한 후로는 유럽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살아간다.

그 동안 그는 외교관ㆍ재무관ㆍ스파이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으며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만년에는 보헤미아 둑스의 성에서 발트슈타인 백작의 사서로 지낸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사서로서의 생활은 지루하기 그지없었으며 무료를 달래기 위해 이 시기에 쓴 작품이《회상록 Histoire de ma vie》(12권, 1826~1838)이다. 카사노바를 저술가로 유명해지게 만든 이 작품은 18세기 유럽의 풍속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18가지 음식으로 풀어낸 카사노바의 삶

작가는 카사노바의 삶을 18가지의 음식을 모티브로 풀어가고 있다. 그는 정력제와 최음제 구실을 하는 퓨전 요리들을 스스로 개발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베네치아 전통 요리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그는 데이트하는 여인의 분위기에 따라 각기 다른 종류의 요리와 술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카사노바가 유럽 각지를 떠돌 때 맛본 각국의 별미들도 소개된다. 러시아의 카타리나 여제가 즐겼다는 달콤한 파이를 비롯해 루이15세의 왕비가 먹었던 쾨니긴파스테테, 교도소장이 마음대로 요리한 18세기식 마카로니, 영국에서 맛본 로스트 비프 등이다.

그 중에서도 카사노바의 입맛에 색다르게 느껴졌던 요리가 영국에서의 로스트 비프다. 프랑스, 이탈리아의 화려한 식단에 익숙해진 그에게 영국인의 검소한 식생활은 낯설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조리법으로 고기 자체의 맛을 살린 큼직한 로스트 비프는 그에게도 만족스러운 음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인 로스트 비프는 원래 바비큐처럼 꼬챙이에 꿴 고기를 화로에 돌려가며 익히는 것이었다. 중세 시대, 가톨릭 전통 때문에 금요일에는 생선 이외의 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일요일에 온 가족이 교회를 다녀와서 모처럼 고기 요리를 먹던 습관이 남은 것이라고 한다. 로스트 비프를 먹을 때는 그 집의 가장이 잘라서 나누어주는 것이 전통이다.

로스트 비프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 요크셔 푸딩이다. 디저트로 먹는 푸딩과는 달리 요크셔 푸딩은 밀가루, 우유, 달걀 반죽을 쇠고기 기름으로 구워낸 빵의 일종이다.

즉 여러 사람이 고기 맛을 볼 수 있도록 고기 구울 때 나오는 육즙을 가지고 빵을 만든 것이다. 고기 뼈를 푹 고아 나눠 먹던 우리네 옛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왠지 친근감이 든다.

파티 음식으로 제격인 로스트 비프는 그냥 얇게 썰어 먹어도 되지만 빵에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거나 샐러드 등에 곁들여도 좋다.

*로스트 비프 만들기:

-재료: 로스용 쇠고기 1㎏, 소금ㆍ후추ㆍ마늘 적당량, 샐러리 1/4줄기, 당근 1/4개, 양파 1/4개, 파슬리 적당량, 식용유 적당량, 월계수잎 1장, 브랜디 2큰술, 버터 2큰술, 호스래디쉬 약간

-육즙 소스 재료: 우스터셔 소스 1큰술, 적포도주 1큰술, 소금 후추 약간씩, 물 1/2컵

-만드는 법:

1. 로스용 쇠고기는 조리 1시간 전에 냉장고에서 꺼내 놓는다. 소금, 후추, 다진 마늘을 바르고 굵은 면실로 전체를 단단히 묶는다.

2. 샐러리, 당근, 양파는 채로 썰어둔다.

3. 200도로 예열해 둔 오븐에 샐러리, 당근, 양파, 파슬리, 월계수잎을 깔고 쇠고기 덩어리를 올려 놓는다.

4. 고기 위에 브랜디를 뿌리고 버터를 올려 놓은 다음 오븐에 40~50분 가량 굽는다. 도중에 서너 번 꺼내어 고인 육즙을 고기에 끼얹어준다.

5. 오븐에서 꺼낸 고기를 알루미늄 호일에 싸고, 다시 신문지 등으로 싼 후, 오븐에 남은 열로 20분 정도 익힌다.

6. 철판에 남은 야채와 육즙에 물을 붓고 끓인다. 끓어오르면 육즙만 따로 냄비에 넣고 육즙 소스 재료를 넣어 다시 4~5분 끓여준다.

7. 로스트 비프를 적당히 썰어 접시에 담고 육즙 소스와 간 호스래디쉬를 곁들인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