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피집에서 하룻밤 산골의 추억만들기

화전민 애환 서린 굴피집에서 보내는 하룻밤

“굴피 지붕이 허술해 보여도 아주 따뜻한 집이래요.”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삼척 덕항산(1,071m) 기슭의 깊은 산골. 손님을 맞는 굴피집 주인 아낙의 미소가 순박하다. 굴피집은 천장이 낮은 덕에 외풍이 없어 오히려 아파트보다 아늑하다. 뜨뜻한 방바닥에 누우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깊고 깊은 산골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만 같다.

뒤뜰로 나간다. 동쪽엔 살진 상현달이 두둥실 떠있다. 산골 노인의 손등처럼 울퉁불퉁 거친 굴피 지붕을 쓰다듬는 달빛은 맑은 공기에 깨끗이 걸러진 듯 한없이 맑다.

굴피 지붕 너머의 감나무엔 산골 인심인 듯 홍시가 된 까치밥이 넉넉히 매달려있다. 뜰 한 쪽엔 차곡차곡 쌓아놓은 굴피 더미도 보인다.

굴피집과 너와집 구경할 수 있는 산간마을

골말 앞개울에 있는 통방아. 하루에 벼2가마를 찧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석회동굴인 덕항산 환선굴로 잘 알려진 삼척 대이리 골말은 굴피집과 너와집, 그리고 산골 전통의 통방아를 구경할 수 있는 마을이다. 모두 강원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가옥이라곤 기와집이나 초가 정도만 봐왔던 사람들은 너와집이나 굴피집의 여기저기 물 샐 것 같은 지붕과 바람 드나드는 허술한 판자벽을 보곤 의아해 한다.

그러나 맑은 날 조금씩 틈이 벌어져 있던 지붕은 습기를 머금게 되면 부풀어서 물샐 틈 없는 완벽한 지붕이 되고, 겨울엔 눈이 덮이면서 그 무게에 눌려 틈이 없어진다. 허술한 판자벽도 겨울철엔 땔감으로 쓰는 장작을 뱅 돌아가며 쌓아놓으니 걱정할 게 없다.

굴참나무 껍질을 지붕에 차례로 포갠 굴피집은 물이 잘 빠지고 건조가 잘 되거니와 보기와 달리 수명이 길어 흔히 ‘굴피 천년’이라 한다.

보통 굴피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처서 전에 벗긴다. 그 이후엔 나무의 수분이 말라서 잘 벗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붕을 덮은 후 몇 년 지나면 거꾸로 뒤집어서 다시 쓴다. 보통 3년 주기로 썩은 조각들을 교체하고 보수한다.

지금은 향토음식점으로 바뀐 골말의 굴피집은 애초엔 너와를 얹었으나 1930년경 너와를 채취하는 데 어려움이 많자 굴피로 지붕을 덮게 되었다.

동양최대의 석회동굴롤 알려져 있는 환선굴. 내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이 집은 온돌방, 도장방(창고), 외양간, 봉당(마루 앞 토방) 등이 한 지붕 아래 외벽으로 감싸져 있어, 겨울의 추위를 덜게 하고 산짐승들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굴피집 바로 위쪽 언덕에 자리한 너와집은 지금의 집주인인 이종옥씨의 11대 선조가 350여년 전 병자호란 때 경기 포천에서 피난 와 정착한 집이라고 한다. 민박을 치지 않고 노인만 사는 집이기 때문에 둘러볼 때 조심스럽다.

너와집이란 지붕에 기와나 이엉 대신 얇은 나무판이나 돌판을 덮는데, 이 집은 나무판을 덮었다. 나무 너와는 질이 좋은 소나무를 길이 60~70㎝, 너비 30㎝, 두께 3~5㎝ 정도로 쪼개서 만든다.

목재라서 뒤틀리고 사이가 떠서 빗물이 샐 것 같지만 목재가 습기를 받으면 차분하게 가라앉는 성질이 있어 빗물이 새지 않는다.

골말 앞개울의 통방아는 100여년 전에 대이리 마을의 방앗간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일명 물방아 또는 벼락방아라고도 한다. 이 통방아의 공이 위에는 굴피를 덮은 덧집을 원추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물통에 흐르던 계곡물이 담기면 그 무게로 공이가 올라가고 그 물이 쏟아지면서 공이가 떨어져 방아를 찧게 된다. 사람이 발로 힘을 써서 디디는 디딜방아보다 힘이 세고 수월해 편리하지만 육중한 몸체 때문에 느린 것이 흠이다.

피나무로 만든 김칫독.

그래도 하루에 벼 2가마를 찧을 수 있었다고 하니 노동력이 부족한 산간 오지에서 제법 밥값을 하는 셈이다.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인 환선굴

덕항산(1,071m) 제일 깊숙이 자리한 골말의 굴피집과 너와집은 인근의 토박이 사진작가에 의해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최근 동양 최대의 석회동굴이라는 환선굴(幻仙窟, 천연기념물 제178호)이 개방되면서 외지인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환선굴은 입구 15m, 폭 20m에 이른다. 굴속에는 장님굴새우 등 희귀동식물과 아름다운 석순 및 종유석, 그리고 오래 전 수도승이 기거하던 온돌터와 아궁이가 남아 신비로움을 더한다.

1998년 동굴 중 일부(총연장 6.5㎞ 가운데 1.6㎞)가 개방됐다. 동굴을 관람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매표소에서 동굴 입구까지 30분과 내부 관람 1시간30분을 합쳐 총 2시간 정도다.

관람요금은 어른 4,000원 중고생 2,800원 초등학생 2,000원이며, 주차료는 1일 기준 소형 1,000원이다. 동굴 개방시간은 동절기(11월 1일~이듬해 2월 말)는 08:30~16:00, 하절기(4월1일~10월31일)는 08:00~17:00다. 동굴관리사무소 전화 033-541-9266

여행정보

숙식 전통 굴피집인 대이리굴피식당(033-541-7288)에서 숙박이 가능하다. 큰방은 3만원, 작은방 2만원. 산채비빔밥과 갈비탕이 모두 5,000원. 이외에도 이종대민박(033-541-1554), 이종순민박(033-541-7288) 등 십여 군데의 민박집이 있다. 골말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은 산채비빔밥을 주메뉴로 한다.

교통 △영동고속도로 동해 나들목→7번 국도→삼척→38번 국도(태백 방향)→신기리 삼거리(우회전)→8㎞→환선굴 매표소→100m→골말. △동서울종합터미널→삼척=하루 18회(07:10~18:50) 운행. 3시간30분 소요, 요금 1만4,300원. 삼척→환선굴(골말)=하루 6회(06:10 08:20 10:20 14:20 17:20 18:50) 운행. 40분 소요, 요금 2,420원. 삼척종합버스터미널 전화 033-572-2085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