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조각 거장의 예술혼을 만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조각가 문신(文信, 1923~1995)의 소품조각과 유화ㆍ채화가 한 자리에 모였다. 서울 인사동 윤 갤러리에서 이달 30일까지 열리는 ‘문신 소품조각의 향연장’이다.

이 전시회에선 전국적으로 처음 공개되는 소품조각 22점과 미술애호가들이 접할 수 없었던 유화 및 60~90년대 창작한 미공개 채화 중 가장 우수하고 특징적인 14점이 선보인다.

문신의 예술은 1969년 프랑스 지중해 연안인 포르발카레스의 미술관에서 13m짜리 오구매(흑단재 목조각) ‘태양의 인간’을 출품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본격화했다.

처음 회화로 출발한 문신은 이후 세계 조각계에 데뷔, ‘개미’시리즈를 출발점(1968~71년)으로 ‘사랑’‘화(和)’‘생명’을 거쳐 94년 ‘비상’시리즈 등 불멸의 명작을 남겼다.

1969~79년 세계 각국에서의 150회 초대전, 1990~92년 3년간에 걸친 동서유럽 순회전을 통해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림으로써 민간외교의 전령사역을 톡톡히 했다.

1992년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헨리무어, 알렉산더 칼더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3대 거장 조각전을 열었다.

1970년대 말 문신과 깊은 교류를 하던 자크 시라크 파리 시장(현 대통령)은 세계적 조각가로 우뚝 선 그를 귀화시키려 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적극나서 귀국을 종용했다.

문신은 전세계 예술의 메카이자 작가로서의 영화가 보장된 프랑스를 마다하고 조국을 택해 1979년 11월 귀국했다. 문신 예술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였는지를 보여주는 예이자 러시아 태생의 세계적 화가 샤갈이 프랑스를 택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신은 전 생애를 통해 ‘노예처럼 작업하고 신(神)처럼 창조한다’는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일관했다. 그의 작품은 무명시절의 무수한 노력과 세계적 작가가 된 뒤에도 하루 5시간 이상을 잠자지 않고 창작에 몰두한 숭고한 정신력의 산물이다.

이번 전시회의 소품조각들은 문신이 세계적 조각가로 부상하기 전인 60년대 파리의 초라한 자취방에서 창작한 것으로부터 시작해 임종 전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창작한 작품들이다.

문신 조각의 근원을 알리는 소품조각 22점은 문신예술의 아픔과 성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결정체나 다름없다.

1980년 유화작품, 1979년(왼쪽)과 1986년 작업한 채화 (왼쪽부터)





함께 전시된 1958년작 유화 ‘밤’및 1980년작 모래작업 유화 ‘추상(무제)’과 채화 14 점은 국내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로 문신이 회화에도 탁월한 작가임을 보여준다.

세계적 작가에 걸맞게 대형 전시관에서만 볼 수 있었던 문신의 작품을 윤 갤러리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된 데는 2년에 가까운 기간 작품을 수집한 윤용철 대표의 노력이 한몫 했다.

문신의 부인 최성숙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장은 “미술시장이 어렵고 소형 갤러리임에도 꾸준히 기획전을 열어 예술문화 전달자의 표상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차가운 계절에 20세기 후반 세계화단을 경이와 찬탄으로 몰아넣은 문신의 영감과 구체적 생명력이 숨쉬고 있는 작품들을 통해 한 해의 대미를 훈훈하고 풍성하게 갈무리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