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난치병, 그래도 길을 있다

아토피를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치료가 힘들 뿐더러 갓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되도록, 환자 자신은 물론 온 가족들을 끊임없이 못 살게 굴기 때문이다.

환자를 괴롭히는 법도 가지가지다. 발현 증상은 연령대에 따라 변화무쌍하여, 영ㆍ유아기에는 신체 가장 약한 부위인 피부에 염증을 일으키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호흡기로 올라왔다가(알레르기성 천식) 성인이 되면 코로 옮겨와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 일쑤다. 이를 의학적으로 ‘알레르기 마치(행진)’라고 부른다.

아토피는 난치병 중의 난치병이다. 온몸 여기저기가 가려워 연고제를 바르면 그 때일 뿐, 미칠 것같아 피가 나도록 박박 긁어대면 벌겋게 달아오르고 나중에는 피부가 닭살처럼 오톨도톨 거칠어지고 거무튀튀하게 탈색되어 보기에도 흉하게 망가진다.

그러나 아토피, 더 정확하게 아토피성 피부염이 왜 생겨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인체 면역체계가 외부 특정물질에 대해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알레르기 질환의 일종으로, 환경적 요인이 맞물려 증세를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의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면역체계 이상이 주요 발병원인

“아토피의 발병은 면역학적 이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ㆍ유아기에 생겨나는 아토피는 어머니의 자궁 속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면역학적으로 튼튼하게 태어나지 못한 것이 원인인데 비해 성인 아토피는 육류, 우유, 달걀 등 이종단백질의 섭취가 늘어난 탓입니다.”

아토피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서울 성내동 혜원한의원의 변임정(33) 원장은 “아토피를 비롯한 각종 피부질환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면역체계 이상이 발병 원인인 경우가 많다”면서 “어머니의 뱃속 환경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발병 원인에 대해 설명한다.

변 원장의 설명처럼, 아토피성 피부염은 유전 탓이 크다. 발병 확률은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아토피를 앓은 적이 있을 경우 30~40% 정도이고, 부모 모두 있을 경우는 70%까지 올라간다.

대물림하는 것은 체질 뿐만이 아니다. 예전과 판이한 생활환경과 부모의 식습관 패턴도 자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소화기능을 돕는 섬유소는 적은 반면 열량만 높은 달콤한 음식과 방부제, 보존제 등 각종 화학 첨가물이 뒤엉킨 가공식품을 많이 먹다 보니까 그 해악이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이라는 게 변 원장의 진단이다.

양ㆍ한방을 통틀어 아토피를 씻은 듯 고쳐주는 치료법은 아직까지 없다. 이런 까닭에 아토피 환자나 그 가족들은 이곳저곳을 전전하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비방에 귀를 솔깃해 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급성증상을 빠르게 가라앉히거나 또는 너무 긁어 피부에 생채기가 나 2차 감염의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항생제가 들어간 연고를 바르는 것이 효과적이다.

피부는 한번 손상을 받으면 재생되는 데 2~3개월의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차라리 손상을 예방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연고제를 자꾸 바르다 보면 내성이 생겨난다는 것이 문제다.

“한방에서는 아토피의 원인이 몸에 열이 많은 탓에다가 면역학적인 불균형이 겹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달아오르는 열을 식혀주고 부족한 진액을 보충하는 것이 곧 치료법이 됩니다.”

'1침2구3약' 원칙으로 장기 치료

변임정 원장이 아토피 증상에 관해 설명을 하고 있다.

한방에는 ‘1침2구3약’이라는 말이 있다. 치료 효과는 침, 뜸, 약의 순으로 강하기 때문에 급성일수록 침을, 만성일수록 약을 쓴다는 일종의 치료지침이다.

이 원칙은 아토피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환자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아토피로 고통받는 만성 질환자들이기 때문에 한약치료를 기본으로 하면서 침이나 천연약재로 만든 한방연고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염증을 가라앉히는 한편 손상된 피부를 재생시키는 데 주력한다고 변 원장은 설명한다.

이에 따라 약재에는 부평초, 우방자, 백출 등 해열 작용을 하는 것들이 들어가고, 침의 경우는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열이 몸의 곳곳으로 고루 퍼져나가도록 합곡(合谷)과 태충(太衝) 등 손과 발의 네 군데 관절인 사관(四關)에 침을 놓는 것이 보통이다.

너무 가려운 나머지 밤잠을 설치면서 피가 나도록 피부를 긁게 마련인 아토피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서는 가려움증을 먼저 덜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약재에는 소양증(搔痒症ㆍ가려움증)을 억제하고 항알러지 효능을 가진 약재들을 추가해야 한다.

아토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4~6개월 정도의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변 원장은 한약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섬유질 위주의 식습관 등 올바른 생활습관을 유지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토피 치료율도 나이가 들수록 떨어집니다. 피부 재생 속도가 그만큼 더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를 바로 시작하는 한편 자신의 생활패턴을 되돌아보고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면역체계 바로잡기' 가 근본적 치료법

난치병일수록 비방(秘方)이 난무한다. 아토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혜원한의원 변임정 원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가 너무 얇다”고 탄식을 한다.

따라서 ‘용하다’거나 ‘천연제품’ ‘방부제 없음’이란 말을 곧이듣고 과학적 근거를 따져 묻지도 않는단다. 용하다는 것은 뒤집어보면 약효가 아주 강한 것을 쓴다는 뜻일 수 있다는 것이 변 원장의 설명이다.

“아토피는 피부가 긁히거나 베이는 등의 단순한 증상이 아니다”고 전제를 깔면서 변 원장은 그 이유를 빵빵한 풍선에 비유해 설명했다.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반대쪽이 튀어나오기 마련인 것처럼, 아토피는 증상이 없어졌다고 해서 치료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온몸의 면역세포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풍선의 꽉 찬 바람을 빼듯, 면역체계를 바로잡아야 근본적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환자가 처음 내원을 하면, 그는 아이가 아니라 어머니를 ‘심문’한다. 아토피를 앓은 적이 있는지, 생활습관은 어떤지, 임신 중 알레르기 질환이 있었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는 것이다.

아토피의 발병은 부모 탓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심야 쇼핑족의 행태도 꼬집었다. “주말이 되면 아이를 쇼핑 카트에 태우고는 이유식이다 냉동식품이다 밤 늦도록 쇼핑을 즐기는 부부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깊은 잠을 못 드는 것은 물론이고 입맛도 자꾸만 달고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져 아토피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됩니다.”




송강섭 의학전문기자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