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되살리는 밥도둑일세"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리운 맛’의 기억이 한 가지쯤 있을 것이다. ‘맛’은 사진이나 녹음으로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인 만큼 그 그리움도 각별하다.

우리 시대 명사들이 갖고 있는 맛의 기억은 어떤 것들일까. 에세이집 ‘잊을 수 없는 밥 한그릇’은 소설가 박완서, 만화가 홍승우, PD 출신의 교수 주철환 등 13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그리운 맛’ 이야기다.

개성 강한 필자들이 모인 만큼 이들이 엮어 나가는 맛의 추억은 어떤 것일까 읽기 전부터 궁금해진다. 박완서, 성석제 같은 작가들은 특유의 글발을 십분 활용해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만화가 홍승우와 고경일은 재치 넘치는 그림으로 보는 이를 유쾌하게 만든다. 한편 문화인류학자 장용규는 줄루족의 음식에 담긴 아프리카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음식들 중에는 값이 비싸거나 희귀한 것들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맛보았던 메밀칼싹두기, 강된장과 호박잎쌈, 보리밥과 청국장 등이다.

“토장국 한가지에 밥을 먹는 사람은 세상에 죄 지을 일이 없다. 세상의 죄란 죄는 진수성찬, 산해진미 찾는 사람들이 짓고 산다. 당당하고 정직한 길, 그것이 밥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 내가 먹는 이 밥 한 그릇은 당당함으로 얻은 밥인가 비굴함으로 얻은 밥인가 묻게 된다"(공선옥)는 구절을 보면 이 책의 주제 의식이 무엇인지 금새 알 수 있다.

더러는 아름답지 못한 추억들도 등장한다. 비빔툰의 만화가 홍승우는 청국장을 드시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여관을 전전할 때 한동안 끼니를 이었던 음식이 청국장이었기 때문이다. 주철환 교수는 자신을 양자로 데려가려 했던 아주머니가 건네주던 바나나를, 달콤하기보다는 씁쓸한 기억으로 떠올린다.

감칠맛 나는 글과 함께 그림이 곁들여져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해준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소설가 박완서다. 문학계에서도 미식가로 알려진 그가 그리워하는 음식은 소박한 개성 지역의 시골 음식들이다.

그 중 요즘 들어서는 맛보기 힘든 최고의 음식으로 꼽는 것이 참게장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젓가락 끝으로 파내 밥 위에 얹어 주었던 참게장의 맛에 대해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혀 전체가 반응하고 입안의 점막까지도 그 맛을 한 번만 보면 생전 잊지 못한다”라고 평하고 있다.

‘밥도둑’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는 음식이 간장게장이다. 노랗고 찐덕찐덕한 장을 뜨거운 밥에 비벼 먹으면 없던 입맛도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민물게로 담가야 제 맛

간장 게장은 꽤 오래 전부터 반찬으로 상에 올랐던 음식이다. 민물에서 자라는 참게를 물에 담가 하룻밤 두면 밤새 찌꺼기를 토해 낸다.

이를 솔로 깨끗이 씻어 항아리에 담아두고, 날 쇠고기를 잘게 썰어 넣으면 게가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끓였다가 식힌 청장을 붓고 따라내고 다시 끓여 붓기를 거듭하면 조금씩 발효가 되면서 맛이 든다.

그런데 이제는 민물 게가 귀해진 데다 디스토마가 있다고 하여 대부분 꽃게로 게장을 담근다. 게딱지에 담긴 노란 장맛을 즐기고 싶으면 암컷을, 꽉 들어찬 살맛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수컷을 선택한다.

최근에는 짠맛과 비린내 때문에 간장 게장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식당에 따라서는 따로 낸 국물에 간장을 섞어 덜 짜게 담근 간장 게장도 나오고 있다.

홈쇼핑 등에서 판매되는 한약재 넣은 간장 게장은 비린내는 나지 않지만 게장 특유의 감칠맛은 다소 줄어드는 게 단점이다. 집에서 직접 게장을 담그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가족들의 입맛에 맞게 양념을 조절할 수 있는 점이 좋다. 다만 게는 반드시 신선한 것을 사용해야 한다.

*간장게장 담그기

-재료: 꽃게 4마리, 간장 4컵, 대파 2대, 마늘 3통, 생강 1톨, 설탕ㆍ참기름 적당량, 실고추 약간

-만드는 법

1. 게를 물에 담근 채 솔로 잘 닦고 깨끗이 헹구어 물기를 없앤다.

2. 1을 항아리에 담고 소금을 뿌려 6시간쯤 절인다.

3. 파, 마늘, 생강은 곱게 채썬다.

4. 냄비에 파ㆍ마늘ㆍ생강ㆍ참기름ㆍ설탕ㆍ간장을 붓고 실고추를 약간 뿌려서 끓인다.

5. 항아리에 절여 놓은 게를 큰 그릇에 옮겨 담고 끓인 양념간장이 뜨거울 때 부어 1시간쯤 둔다.

6. 5의 간장을 다시 따라내 펄펄 끓여서 다시 붓는다. 3~4차례 반복한다.

7. 마지막에 부은 간장이 식을 때쯤에 먹을 수 있다.

*tip: 끓인 간장을 식혀서 부으면 발효에 2주 가량 걸린다.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sejinjeong@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