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아우성을 잠재우고 참 자아를 만나는 성찰의 시간

해가 저물자 사방이 고요하다. 산사의 밤은 속세보다 빨리 깊어 간다. 해가 지나 싶었더니 어느새 하늘이 캄캄해지고 별이 하나 둘 불을 켠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가 그윽하게 울린다. 싸늘한 저녁 공기가 코끝을 에지만, 상쾌함이 좋아 마냥 절 마당을 서성이게 된다.

예불과 공양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참선. 번잡했던 일상을 잊고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새해를 설계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아름다운 절집 내소사

올해의 끝을 앞두고 템플 스테이를 하기 위해 부안 내소사를 찾았다. 내소사는 템플 스테이를 하기에 좋은 절집이다.

사찰에서 템플 스테이를 의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데다 프로그램도 알차고, 무엇보다 사찰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이 다른 어느 곳보다 빼어나기 때문이다.

포근하게 들어선 가람의 배치, 뒤를 감싼 산자락의 위용, 사찰로 들어가는 길에 늘어선 전나무 숲. 여기에 더해 템플 스테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전, 넉넉함이 물씬 풍기는 서해바다에서 마음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으니 이만한 사찰을 찾아보기 어렵다.

내소사의 아름다움은 일주문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울창한 전나무 숲이 반겨준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듯이 빽빽하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숲길의 운치가 한층 깊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비로소 사찰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의 중심이 되는 대웅보전은 다른 절과 달리 단청에 채색이 없다.

그렇기 때문인지 단아하고 정갈한 느낌이다. 채색대신 대웅전을 뽐내는 건 문창살에 조각된 꽃문양들이다. 국화와 연꽃을 조각해 문을 장식했다.

이밖에 고려동종, 법화경절본사본, 영산화괘불탱화, 삼층석탑, 봉래루, 설선당과 요사 같은 보물이 절집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새벽예불에 발우공양까지

스님들처럼 엄격한 생활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주어진 프로그램을 준수하는 것이 템플 스테이의 기본이다. 사찰에서 처음 자 보는 속세인들이 가장 낯설어 하는 것은 새벽 예불이다.

새벽 4시에 시작되는 예불에 참가하기 위해 30분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잠자리를 정돈해야 한다.

졸린 눈을 비비고 법당 안에 들어서면 이미 스님들이 앉아 참선 중이다. 눈치껏 절을 따라 하고, 한글로 적힌 불경을 따라 외우다 보면 어느새 잠이 달아나고 머리가 맑아진다.

새벽예불을 끝낸 뒤 졸음을 참지 못하는 몇몇 이들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고, 어떤 이들은 산책을 하기도 한다.

아침 공양은 6시다. 스님들처럼 발우공양을 해보는 시간이다. 나란히 줄을 맞춰 앉아 발우를 자기 앞에 가지런히 편다.

그릇은 모두 네 개. 밥, 국, 찬, 물그릇이다. 참가자들 가운데 몇몇이 앞으로 나가 밥과 국, 찬을 나누어준다. 발우공양에서는 밥알 하나도 남기지 않아야 하므로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받는 게 중요하다.

죽비소리와 함께 공양이 시작되고, 공양하는 동안에는 침묵해야 한다. 마지막에 김치 한 조각을 남겨 그릇을 물로 깨끗이 닦아 낸 다음 그 물까지 후루룩 마시면 공양이 끝난다.

이렇게 공양을 끝내면 굳이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보자기로 묶어 둔다.

울력으로 사찰 청소를 하고 나면 그윽한 차 한 잔이 기다린다. 서너 명씩 둘러앉아 차를 나누며 스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문득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작은 기쁨들 사이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비록 1박2일의 짧은 체험이지만 한 해가 끝나 가는 무렵, 지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자아를 성찰하는 기회

템플 스테이(Temple Stay)는 우리나라 사찰의 전통과 멋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사찰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예불과 참선, 다도, 공양, 울력 같은 기본적인 사찰의 일상을 비롯해 연등 제작, 녹차 만들기, 탁본, 선무도 등 특별한 체험도 하게 된다.

템플 스테이는 불교신자가 아닌 일반인이나 외국인을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종교적인 접근이라기보다 우리나라 역사와 괘를 같이 해온 불교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가족단위로 참가하기에도 좋고, 모처럼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갖기에도 그만이다.

템플 스테이를 하는 동안에는 가급적 묵언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며, 명상의 시간을 갖도록 애쓴다.

고요한 산사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예불, 다도, 발우공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삶의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조계종 산하 20여 개의 사찰에서 템플 스테이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번 겨울에는 ‘새해, 산사에서 고요한 아침을’이라는 제목으로 새해맞이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새해맞이 템플 스테이가 가능한 곳은 여주 신륵사, 강화 국제연등선원, 공주 갑사, 공주 마곡사, 공주 영평사, 서산 부석사, 예산 수덕사, 김제 금산사, 부안 내소사, 해남 미황사, 나주 불회사, 장성 백양사, 구례 화엄사, 부산 범어사, 경주 골굴사, 안동 봉정사, 원주 구룡사, 동해 삼화사 등이다.

새해맞이 새벽등반이나 해넘이ㆍ해맞이, 새해 타종식, 떡국잔치, 아침 명상 등 특별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글 : 김숙현 자유기고가

사진: 내소사 & 템플스테이 사무국 제공

체험여행 수첩

*내소사 템플 스테이: 내소사는 이번 겨울에 매주 템플 스테이를 운영한다. 1박2일에 일반 5만원, 중ㆍ고생 3만원. 2박3일에 일반 7만원, 중ㆍ고생 5만원. 내소사 063-583-3035

전국 템플 스테이 안내: 조계종 산하에 템플 스테이 사무국이 마련돼 있다. 내소사 뿐만 아니라 전국 사찰 가운데 템플 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곳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구할 수 있다. 템플 스테이 할 때는 사찰에서 수행복을 지급하며 개인적으로 편한 운동화, 방한복, 세면도구를 준비해 가면 된다. 새해맞이 템플 스테이 비용은 2만~5만원(1박2일). 템플 스테이 사무국 02-732-9925~7 www.templestay.com

찾아가는 길: 내소사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줄포IC로 나간다. 30번 국도를 타고 곰소, 격포 방면으로 가다가 곰소항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내소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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