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노랫가락이 징허기도 허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민요 ‘진도 아리랑’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섬 진도(珍島)는 삼보(三寶)와 삼락(三樂)의 고을이다.

세계에 이름 드높인 견공 진돗개와 청정지역에서 자란 구기자, 돌미역이 삼보요,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드러내고 있는 노래와 남종화의 본산으로 사랑 받을 정도로 빼어난 서화(書畵), 붉은 때깔의 술 홍주가 삼락이다.

역사와 예술의 본향, 울돌목·운림산방

그렇지만 진도를 찾는 여행객은 먼발치서 진도대교라도 보이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우리 배달 겨레를 누란(累卵)의 위기에서 구해낸 구국의 성웅,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게 된다.

충무공이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단 12척의 배로 130여 척의 적선과 맞서 물리친 명량대첩의 현장이 바로 여기다.

진도대교를 건너 망금산(111.5m) 녹진전망대에 오르면 진도와 해남 화원반도 사이의 울돌목, 즉 명량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9월16일 왜군 함대가 울돌목으로 공격해왔다. 적은 133척의 대함대였고, 반면 조선 수군은 12척에 새로 1척을 보탠 13척이 전부였다.

이른 아침 울돌목을 지나는 북서해류는 가공할만한 유속이었다. 이곳의 조류는 시속이 최고 13노트(24㎞)로 이는 배가 제대로 운행할 수 없는 속도다.

더구나 조수 이동이 심한 보름사리라 물살은 어느 때보다 거칠었다. 그러나 장군은 적장보다 물살을 바르게 읽고 있었다.

좁은 해협에서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이한 장군은 바뀌는 조류를 이용해 순식간에 왜군 함대 31척을 무찔렀고, 남은 병력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전사에 길이 남을 대승이었다.

녹진전망대에서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용장산성은 고려시대 대몽항쟁을 주도했던 삼별초가 항전했던 현장.

1270년 고려가 몽골에 항복하자 배중손은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로 들어와 항쟁을 계속했으나 이듬해 펼쳐진 여몽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하지 못했다.

당시 김통정 부대는 동남쪽의 금갑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배중손 장군은 진도 남단의 남도석성으로 향하다가 굴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해남 땅에서 바라 본 진도대교(왼쪽)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유가 말년에 거처하던 운림 산방(위). 지산면 가치리의 세방낙조(아래)는 진도가 자랑하는 경치중 하나다.

진도읍 동쪽의 첨찰산(485.2m) 기슭으로 발길을 옮기면 진도 여행의 백미로서 서화(書畵)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운림산방(雲林山房)이 나온다.

첨찰산 기슭에 자리잡은 운림산방은 연못과 어우러진 정원이 조화를 이룬다. 이곳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癡) 허유(許維․1809-1893)가 8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제자를 가르치며 작업하던 화실.

추사의 남화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평을 받는 소치는 죽수계정도, 선면산수도, 노송도 같은 작품을 남겼고, 추사 김정희의 반신상인 ‘완당선생 초상’ 같은 초상화도 그렸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이듬해 고향 진도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지었다.

이후 운림산방은 한국 남화의 본거지로서 소치 허유~미산 허형(米山 許瀅)~남농 허건(南農 許健)~임인 허림(林人 許林)~임전 허문(林田 許文)의 직계 4대에 걸쳐 5인의 화가를 배출하면서 세계에서 드물게 큰 화맥을 이어가고 있다.

운림산방 안에는 소치의 사당과 소치ㆍ미산ㆍ남농 3대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소치기념관, 진도의 고유한 문화적 배경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진도역사관 등이 조성되어 있다.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초등학생 800원. 관람시간은 09:00~18:00. 주차는 무료. 전화 061-543-0088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세방낙조

진도대교를 건넌 뒤 녹진전망대와 운림산방을 들렀다면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도 주민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지산면의 지산면 가치리의 세방낙조를 볼 일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붉은 빛 일몰로 장관을 이뤄 중앙기상대가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했을 정도다.

또 물때를 제대로 맞췄다면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회동 바닷가도 찾아가보자.

만약 진도에 들어선 날이 금요일이라면 일몰 감상 후엔 ‘금요상설무대’가 펼쳐지는 임회면 상만리 언덕의 남도국립국악원(061-540-4033)으로 발길을 향하는 게 좋다.

전통예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남도민요와 진도다시래기, 진도 북놀이를 비롯해 심청가․흥보가 등의 판소리와 살풀이 등의 공연이 저녁 7시부터 펼쳐지기 때문이다. 무료다.

이렇듯 늘상 아리랑 울려 퍼지는 섬 진도의 겨울은 한없이 푸르다. 전국 시장 점유율이 20퍼센트에 이르는 월동 배추와 대파 때문이다.

거기에 드문드문 보리밭도 펼쳐지니 겨울이라 해도 푸르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래서 내륙은 폭설과 대설주의보가 한창인 한겨울에도 진도 주민들은 대파와 배추를 수확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가만 귀 기울이면 어디선가 구성진 진도 아리랑 노랫가락이 들려올 것만 같은 저 널따란 들녘에서.

여행정보

별미 간재미는 겨울부터 이른봄 사이 춥고 눈 올 때가 제철이다. 싱싱한 간재미를 통째로 쪄내는 찜은 양념이 밴 속살과 연골이 부드럽다. 간재미를 토막 내 신김치와 함께 넣고 푹 끓여낸 탕은 국물맛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해 숙취 해소에 최고다. 진도파출소 맞은편의 문화횟집(061-544-2649), 성내리의 제진관(061-544-2419)이 잘 알려져 있다. 찜 한 접시(3인분) 2만원, 회무침은 2~3만원.

숙식 진도대교 부근에 귀빈장(061-542-3579), 대교장(061-542-8508) 등 10여 개의 모텔이 있다. 신비의 바닷길 주변은 가게와 민박집 몇 호가 있을 뿐 숙식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의신면 초사리의 마린빌리지(061-544-7999, 8999)는 통나무로 지은 펜션. 운림산방 근처에 별장민박(061-543-7749) 등의 민박집이 여럿 있다.

교통 △서해안고속도로 목포 나들목→영산호하구둑→영암방조제→금호방조제→77번 국도→해남군 문내면→진도대교. 수도권에서 6시간 소요. △서울→진도=강남터미널(호남선)에서 매일 4회(07:35, 09:00 15:00 16:35) 운행. 요금 일반 18,900원, 우등 28,100원. 6시간 소요. 광주→진도=광주종합터미널에서 40분~1시간 간격(06:00~20:00)으로 수시 운행. 요금 12,400원, 2시간50분 소요. 부산→진도=부산서부시외터미널에서 매일 1회(14:40) 운행. 요금 24,800원, 6시간 소요.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