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다가가 시인의 가슴에 귀 기울여봐요

시인 박물관/ 손현숙 우찬제 지음ㆍ김신용 사진/ 현암사 발행/ 1만8,000원

또 한 해가 간다.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달력을 새 것으로 바꾸면서 느끼는 감회는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새해를 맞으면서 희망과 설레임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가하면,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서 후회와 한탄으로 가슴을 치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마음을 추스르고, 새롭게 할 시점이다. 이 때 시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 것은 어떨지. 그의 시 한 편을 곁들이면서 말이다.

시인이 우리와는 아주 다른 뭐 특별한 존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인은 시인이다. 뭔가 조금은 유별날 것 같고, 그것이 우리를 조금은 편안하게 해줄지도 모를 일이다.

‘음화(陰畵)로 풀어 쓰는 시’가 부제인 이 책은 시인의 사진과 평론가의 비평, 후배 시인의 산문 등이 잘 짜여진 옷감처럼 얽혀있다. 여기에 시인들의 직접 쓴 간단한 글을 더했다.

한때 시집 한 권이 100만부 이상 팔린, 어떤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시의 전성시대가 있기도 했지만, 지금 시나 시인의 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이런 형편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내년에도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혹자는 그것이 인터넷 시대의 시의 운명이라고도 하지만, 정녕 시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일까.

이 책은 ‘꽃’의 작가 고 김춘수로부터 ‘햇빛 속의 호랑이’의 최정례에 이르기까지 58명의 시인을 모았다.

경향이나 파벌 등을 따지지 않고 순수와 참여, 도시와 시골, 개인적 문제와 사회적 발언 등을 골고루 실었다. 생존 문인을 원칙으로 했으나 책이 나오기 전에 김춘수와 구상이 타계했다.

이 책은 시인 손현숙과 사진가 김신용이 3년 동안 시인들을 직접 만나 기록한 작업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작업은 ‘현대 시학’에 ‘시인의 안과 밖’이란 제목으로 연재했고, 이번에 책으로 엮으면서 문학 평론가 우찬제의 시인론을 보탰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축 늘어진 러닝 셔츠 차림에 형형한 두 눈을 하고 있는 김수영의 흑백 사진은 시대와 불화하면서 자유를 외친 치열했던 그의 삶을 말해준다.

그의 어떤 시집도 대신할 수 없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바바리 코트 깃을 세우고 담배를 문 사진 속 까뮈의 모습은 그의 글쓰기가 얼마나 고독한 작업이었는가를 짐작케 한다.

오랫동안 광고사진을 찍어온 김신용은 5,000여 장의 시인 사진에서 400여 컷을 골랐다. 모두 ‘시인답게’ 포즈를 취하고 있고, 가만히 쳐다보면 모두 무엇인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런 시인의 모습들은 자료적인 가치도 가질 만하다.

58명의 시인에게 공평하게 6쪽씩 배당됐다. 그래서 우선 읽기에 편하다. 지루하지가 않다. 또 좋아하는 시인을 골라서 읽을 수 있다.

시인 손현숙은 부지런히 발 품을 팔아 직접 맞닥뜨린 선배 시인과 그들의 시 세계를 산문으로 그려내고 있다.

링거를 꽂고 마지막 투병을 하면서도 후배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복분자 한 잔을 들이킨 후 손수 글을 써주었다는 구상, 맥주만 마시고 멸치와 고추 마늘을 좋아하며 물기를 거부하는 이승훈 등에 대한 일화는 그들의 시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구상은 ‘앉은 자리가 꽃 자리이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 앉은 자리가 꽃자리이다’라는 그의 시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썼다. 세밑에 나직이 읊어볼 만하지 않은가.


이상호 편집위원 sh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