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핑크빛 유혹에 넘어간다

사람들의 미각은 참 예민하면서도 날카롭다. 운 좋게 그 날카로운 미각을 만족시키는 음식을 발견했을라치면 밖에서 몇 십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인내도 아니다.

때론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을 미세한 맛의 차이가 주는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용산의 훈제 돼지고기 전문점 붉은 돼지는 몇 번 간 사람도 헤맬 정도로 골목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붉은 돼지를 찾아 용산의 골목을 두 시간 동안 샅샅이 뒤지다가 포기하고 자포자기로 들어간 골목에서 붉은 돼지 간판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알고 들 찾아오는지 붉은 돼지 안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막상 찾아가보면 그냥 평범한 선술집 분위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훈제돼지고기도 이제는 웬만한 동네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메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식가들은 용산의 미로처럼 얽힌 골목들을 헤매며 붉은 돼지를 찾고 있다.

골목을 따라 실내로 들어가면 넓고 천정도 높아서 우선 첫인상이 편해 보인다. 모든 벽은 황토색으로 마감했고 테이블은 원목 풍이라 차분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테이블 간격도 널찍하므로 그 동선이 겹쳐 다른 테이블에 불편을 주지 않아 선술집으로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자리에 앉으면 바로 숯불과 불판이 올려지고 반쯤 익힌 두툼한 목살이 나온다.

불판은 기름을 최대한 제거할 수 있는 디자인으로 직접 제작해 쓰고 있다. 고기는 개업 당시부터 거래를 하는 집이 있어 질 좋은 국산암퇘지만을 쓴다.

그러나 맛의 비결은 무엇보다도 참나무훈제방식에 있다. 훈제라 고기가 붉은 빛을 띠어 ‘붉은 돼지’란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목살과 갈비는 참나무가마에서 초벌구이를 해서 반쯤 익힌 다음, 다시 손님의 상에서 익히면서 먹는다.

주인이 직접 만든 비법 양념을 뿌리며 투박한 가위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기 때문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데 기름기가 없어 담백하면서 고소하다.

고기가 약간 질긴 맛이 없진 않지만 먹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다. 갈비는 1인 분이면 5~6대 정도가 나오는데 양은 많지 않지만 손에 들고 호호 불어가며 갈비를 뜯는 맛이 쏠쏠한 재미가 난다.

하지만 갈비는 하루 분의 판매량이 빨리 떨어지는 편이므로 미리 확인하는 편이 좋다. 식사 위주의 음식점이 아니므로 찬 가짓수가 많지 않지만 고기의 풍미를 더해주는 것들과 어우러져 있다.

우선 개운한 맛의 아욱국이 푸근함을 들게 한다. 소스는 소금, 콩가루, 고추장이 나오는데 모두 평범한 그것들과는 다소 다른 특별함이 있다.

간장소스는 양파, 고추 등을 넣어 만드는데 역시 고기의 풍미를 배가한다. 고기와 양파를 함께 먹으면 별미다.

샐러드는 양배추에 마늘을 섞은 드레싱 소스만 뿌려져 나오는데 자칫 텁텁해지기 쉬운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항상 시끌벅적하지만 그만큼 정겹고 편안한 분위기다.

메뉴 훈제목살 7,000원, 훈제갈비 7,000원, 껍데기 7,000원 갈비는 일찍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신용산역 3번 출구, 용산 전자랜드 길 건너편 공용 주차장 옆의 작은 골목 막다른 곳에 위치해 있다. 밖에 표지판이 없으므로 주의해서 살펴야 한다.

영업시간 오후 4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하는데 손님이 있으면 조금 더 연장해준다. 공휴일 휴무. 02-706-0916




서태경 자유기고가 shiner96@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