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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여수
기개와 충절의 남도땅 오동도에 동백꽃 피거든…



옛 전라좌수영의 영화를 알려주는 진남관.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 남도로 간다. 아름다운 한려수도 뱃길의 종착지인 여수(麗水)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도 붉은 동백 피어나는 남도의 항구 도시다.

1479년(성종 10)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들어서면서 일약 남해안 방어의 중심 군사도시로 떠오른 여수는 이후 1895년(고종 32)에 좌수영이 폐지될 때까지 무려 400여 년 동안 이웃의 통영과 더불어 남해안 방어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구국의 현장을 찾아가는 ‘충무공 루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1년 전인 1591년(선조 24)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것은 하늘의 뜻이었다. 장군은 이곳을 수군의 중심 기지로 삼고, 기고만장하던 왜군을 맞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연전연승을 거뒀던 것이다.

그래서 여수에선 오동도 동백이 아무리 고와도 임진왜란과 관련된 흔적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중 ‘충민사~진남관~고소대~이 충무공 자당 기거지~오충사~시전동 선소’로 이어지는 동선은 일명 ‘충무공 루트’로 사랑 받고 있다.

덕충동 마래산(385.2m) 기슭에 터를 잡은 충민사(忠愍寺)는 임진왜란이 끝난 3년 뒤인 1601년(선조 34) 민심을 둘러본 이항복(李恒福ㆍ1556~1618)이 왕에게 간청하여 건립했는데, 충무공을 모신 최초의 사액 사당으로 이름 올렸다.

함께 배향한 인물도 쟁쟁하다.

전라우도 수사(水使)로서 당항포ㆍ옥포 등지에서 크게 승리하였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칠천량 싸움에서 전사한 이억기(李億祺ㆍ1561~1597), 이순신장군의 선봉장으로 공을 세웠으나 정유재란 때 안골포에서 전사한 안홍국(安弘國ㆍ1555~1597) 등이다.

사당 옆에 있는 석천사(石泉寺)는 이순신 장군과 함께 종군한 승려 옥형과 자운이 충무공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은 단이 기원이 된 수호사찰.

군자동에 있는 진남관(鎭南館ㆍ국보 제304호)은 전라좌수영의 중심. 진남(鎭南)은 ‘남쪽 즉 왜구를 진압하라’는 뜻이다.

진남관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제사 지내거나 왕명으로 내려오는 벼슬아치를 묵게 하던 대규모 객사(客舍). 이순신 장군이 지휘할 당시엔 이 위치에 진해루(鎭海褸)가 있었다.



돌산공원에서 내려다본 여수항의 야경

그때의 사령부 건물인 진해루는 충무공이 백의종군 중이던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불타 버렸는데,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선조 32) 12월에 삼도수군통계사겸 전라좌수사인 이시언이 그 터에 진남관을 세웠다.

진남관을 나와서 도로를 건너 언덕길을 오르면 고소대(姑蘇臺)다. 이순신 장군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곳으로서, 군령을 어기고 도망했던 병사의 목도 여기서 베었다.

고소대 비각 안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 동령소갈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모두 장군과 관계 있는 소중한 비석들이다.

그 중 가장 오른쪽에 있는 타루비(墮淚碑ㆍ보물 제1288호)는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지 6년 후인 1603년에 임진왜란 당시 살아남은 부하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여 세운 비석.

타루(墮淚)는 ‘눈물이 한없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충무공 휘하의 병사들이 장군을 얼마나 흠모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비석이다.

일제강점기엔 임진왜란 관련 유물유적은 유달리 수난을 많이 당했는데, 이 비석들도 얄궂은 운명을 감내해야만 했다.

1942년 봄, 일본인 여수 경찰서장 마쓰끼가 비각을 헐고 대첩비와 타루비를 감춰버린 것이다.

다행히 광복 후인 여수의 유지들이 수소문 끝에 1946년 당시 국립박물관 정원에 묻혀있던 비석을 발견해 이곳에 봉안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순천귀선으로 불린 거북선을 만든 조선소인 시전동 선소.

고소대를 내려와 동백꽃으로 유명한 오동도를 들렀다 나오면 길은 중앙동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이순신장군의 모친 초계 변씨(草溪 卞氏ㆍ1515~1597)가 5년 간 머물던 송현마을의 충무공자당기거지, 당시 전공을 세우고 전사한 정철, 정대수장군 등을 모신 오충사(五忠祠)를 차례로 지나면 시전동 선소(船所)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에선 3척의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좌수영 선소에서 직접 만든 영귀선(營龜船), 지금의 돌산읍 군내리인 방답진 선소에서 만든 방답귀선(防沓龜船), 그리고 순천부에 속했던 이곳 시전동 선소에서 만든 순천귀선(順川龜船)이 그것이다.

벅수 한 쌍의 안내를 받고 선소마을로 들어서면 깊숙한 만(灣) 안에 다시 직경 40m에 이르는 둥그런 굴강(屈江)이 보인다.

거북선을 비롯한 선박들을 건조하고 수선했던 곳이다.

부근에는 칼과 창을 만들던 풀뭇간, 무기를 갈고 닦았던 세검정(洗劒亭)과 군기고가 잘 복원되어 있다. 거북선을 메어두었다는 계선주(繫船柱)도 남아있다.
여행정보

별미 펄과 모래가 섞인 연안의 얕은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서대는 맛이 담백하고 비리지 않아서 회무침이나 찜으로 애용되고 있다. 막걸리를 1년 이상 삭혀서 만든 식초로 맛을 내는 것이 비법. 중앙동의 중앙파출소 인근 부둣가 횟집촌에 있는 삼학집(061-662-0261)은 미식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는 전문점이다. 여수똑순이집(061-663-8877), 구백식당(061-662-0900)도 유명하다. 1인분 한 접시에 10,000원.

숙식 꼭 서대회무침이 아니더라도 여수항과 가까운 중앙동에 횟집이 즐비하고, 회를 싸게 떠갈 수 있는 수산물시장도 있다. 숙박시설은 유성장(061-662-6001) 등이 있다. 오동도 입구인 수정동엔 동백회관(061-664-1487) 등 한정식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4인 기준 한 상이 보통 6만원. 근처에 숙박시설도 여럿 있다.

교통 △경부(중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대전ㆍ통영간고속도로→진주분기점→남해고속도로→순천 나들목→17번 국도→여수. 5시간 소요. △서울→여수=강남터미널에서 매일 40~60분 간격으로 17회(06:00~17:50) 운행. 5시간30분 소요. 일반 1만9,200원, 우등 2만8,600원. △부산→여수=종합터미널에서 매일 6회(07:04~17:59) 운행. 4시간 소요, 요금 1만4,300원. △용산역→여수역 매시 50분마다 12회(06:50~22:50) 운행. 새마을호(07:50 13:50 17:50) 5시간 소요, 요금 3만5,900원. 무궁화호(9회) 5시간40분 소요, 2만4,200원.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


입력시간 : 2006-01-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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