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고층빌딩 굽어보며 조선시대로 간다

“할머니, 옛날엔 서울에도 기와집이 많았어요?”

“그럼! 할머니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 마을에 기와집이 많았단다.”

1천만 명이 넘는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은 고층 빌딩이 빼곡이 솟아있는 세계적인 도시다.

그럼에도 조선왕조 500년 동안 행정과 군사의 중심이었던 한양이 터를 잡았던 땅답게 전통의 흔적이 아직도 비교적 많이 남아있다.

1990년대 후반에 조성한 전통 마을

마침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옛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에 가보자.

이곳에서 어른들은 산업화된 도시에 묻혀서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옛 추억을 되살리고, 아이들은 조상의 문화와 생활풍습을 배우는 귀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마을이 들어선 남산 북쪽 기슭의 필동 언저리는 조선시대 때만 해도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풍치가 신선이 살만큼 아름다워 청학동이라 불렸다.

그래서 삼청동(三淸洞) 인왕동(仁王洞) 쌍계동(雙溪洞) 백운동(白雲洞)과 더불어 한양의 대표적인 계곡을 지칭하는 ‘한양 5동(漢陽五洞)’에 꼽히기도 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의 의도적인 난개발로 훼손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이곳에 자리 잡은 남산골 한옥마을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마을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남산 제모습찾기’의 일환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1990년 사업을 시작하면서 옛 정취를 살리기 위해 계류를 다시 흘려보냈고, 나무를 심고 정자를 세워 전통 정원으로 가꾸는 등 훼손된 주변환경을 복원했다.

또한 전통 정원 남쪽엔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타임캡슐을 1994년 11월 29일에 매설하였다.

보신각종 모형의 타임캡슐 안에는 서울의 도시모습, 시민생활과 사회문화를 대표하는 각종 문물 600점을 수장함으로써 현시대의 사회상이 400년 뒤인 2394년 11월 29일에 후손들에게 공개된다.

전통정원의 동북쪽에 있는 2,400여 평의 대지엔 전통 가옥이 들어섰다. 서울 시내 각지에 있던 서울시 민속자료 한옥 다섯 채를 옮겨서 복원한 뒤 4년 동안 작업한 끝에 1998년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종로구 옥인동에 있던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대신 건축양식을 그대로를 본떠 복원하였다.

또한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종로구 삼청동에 있던 오위장 김춘영 가옥, 중구 삼각동에 있던 이승업 가옥도 이전해 복원하였다.

다섯 채의 전통 가옥 이전해 복원

눈길을 끄는 것은 부마도위(駙馬都尉) 박영효 가옥. 이는 철종의 딸인 영혜옹주의 남편 박영효 (1861~1939)가 살던 집이다.

박영효는 개화파로서 김옥균과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나중에는 친일파의 거두가 된 비운의 인물.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이 건물은 원래 안채, 사랑채, 별당채, 대문채,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안채만 남고 모두 없어졌던 것을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사랑채와 별당채를 복원하였다.

부엌과 안방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개성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형으로서 서울의 주택으로는 보기 드문 형태라 한다.

이외에도 장대석을 사용한 기단,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가 일곱 개인 7량고주(七樑高柱), 6칸 크기의 부엌 등에서 권력을 누렸던 세도가의 위세를 느낄 수 있다.

목수가 손수 지은 자택을 보고싶다면 이승업 가옥을 꼼꼼히 살펴보자.

흥선대원군에 의하여 경복궁이 중건될 때 목수의 우두머리였던 도편수 이승업이 1860년대에 지은 이 건물은 목수의 자택답게 장식이 많으면서도 정교하며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현재 찻집으로 개조돼 운영되고 있다. 또 독특하게 元(원)자형으로 배치된 윤택영 재실은 선비의 기품이 살아있는 건축물로 꼽힌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장점은 건축물만 달랑 있는 게 아니라 그 집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분에 걸맞게 살림살이를 배치하여 조상들의 삶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다섯 채라 하지만 아이들과 집안 곳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노루 꼬리 같은 겨울 해가 더욱 짧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발길은 마을 가운데 있는 놀이마당에 한참 머문다. 여기서는 화살을 던져 항아리에 꽂는 투호를 비롯해 널, 지게 등이 있어 재미와 추억을 경험할 수 있다.

안쪽의 전통공예관에서는 민화, 침선, 나전칠기, 전통매듭 등을 만드는 방법을 재연하고 각종 공예품도 전시 판매한다. 또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기능보유자들의 작품과 관광기념품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한편, 남산 한옥마을에서는 병술년(丙戌年) 설 연휴(1월 28~30일) 동안에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대고 연주와 농악 한마당, 경기민요 공연 설 잔치, 닭싸움 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벌어진다.

더불어 차례상 차리는 법, 세배하는 법, 한복 입는 법 등 전통 예절 을 무료로 강의한다. 연날리기, 윷놀이, 제기차기 등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민속놀이 체험이다.

한옥마을 관람시간은 09:00~17:00. 관람은 무료. 매주 화요일은 정기 휴일이다. 한옥마을 입구의 공영주차장은 협소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 자세한 사항은 남산골 한옥마을 홈페이지(www.hanokmaeul.org) 참조.

교통 △지하철 3호선과 4호선 환승역인 충무로역 근처에 있다. 3번 출구로 나와 중대부속병원과 매일경제신문사 사잇길로 200m 정도 오르면 한옥마을이 보인다. △시내버스는 지선버스 0013번, 0211번, 7011번 간선버스 104번, 105번, 140번, 263번, 371번, 400번, 604번 등을 이용해 퇴계로3가 한옥마을(한국의집) 앞에서 하차한다.

식사 한옥마을에 있는 이승업 가옥(02-2285-3374)은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점과 전통차를 마실 수 있는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다. 메뉴는 잔치국수(4,000원), 비빔밥(5,000원), 사골우거지국(5,000원), 떡국(6,000원) 등이다. 전통차는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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