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잉태한 흰색의 자태

한동안 날씨가 따뜻했는데 한파가 다시 찾아오려나 보다. 추위가 매섭다. 하지만 지금도, 숲 속 땅 속의 봄 꽃들은 언 땅을 녹여 줄 따사로운 봄볕을 기다리며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있을 터이다.

홀아비꽃대도 그런 봄 꽃의 하나이다. ‘홀아비’란 특별한 단어를 이름 붙인 식물 중에는 홀아비바람꽃도 있다.

이 두 식물은 꽃대가 외롭고 쓸쓸하게 한줄기씩 올라가고 봄을 상징하는 흰색의 꽃잎을 가지며, 그리고 키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주 고운 자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서로 닮았다.

하지만 생김새만은 많이 다르다. 홀아비꽃대는 개성적이고 독특하여 한 번 알면 좀처럼 잊지 못한다.

홀아비꽃대는 홀아비꽃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같은 집안에 속한 꽃대라는 식물은 2개의 대가 올라가지만 홀아비꽃대는 하나씩 올라간다.

봄이 되면 산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난다. 너무 양지바른 곳도, 그렇다고 어두침침한 깊은 숲 속도 아닌 곳에서 하나의 꽃대가 소중하니 쑥쑥 올라간다.

그리고 봄 햇살을 받으면 점차 잎새를 사방에 펼쳐내고 이내 다소곳한 자태를 뽐낸다. 땅의 조건에 따라 작게는 한 뼘 정도, 크게는 종아리 높이까지 자란다.

비늘처럼 번뜩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연한 녹색의 잎은 4장씩 달린다. 엄격히 말하면 잎이 2장씩 마주달리는 것이지만, 달리는 마디가 워낙 짧아 마치 4장이 꽃대를 받쳐 난 듯하다.

잎이 펼쳐지기 전에 피는 꽃들 역시 독특하다. 하나의 꽃대라고 말하는 것은 본래 줄기 끝에 이어 달리는 하나의 꽃차례이다. 어찌 보면 촛대에 얼려진 흰 초처럼 보인다.

꽃차례에 둘려 달리는 삐죽삐쭉한 흰 기관은 꽃잎이 아니라 수술이다. 식물학적으로도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화피(꽃잎이나 꽃받침)가 없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밑부분이 3개씩 붙어있는 형태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 있는 수술에는 꽃밥이 없고 양쪽의 수술은 수술대 밑부분에 꽃밥이 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 지역에 분포돼 있고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자란다

꽃이 하도 예뻐서 우리꽃을 좋아 하는 사람들이 많이 키운다. 정원에 큰 나무 아래 심으면 잘 어울린다. 보통 나지막한 화분에 심어 즐기면 한 계절 자연의 풍미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한방에는 은선초(銀線草)란 이름으로 쓰인다. 한기와 독, 습한 기운을 없애고 피를 잘 돌게 하는 등 여러 증상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달여 복용하거나 술로 담궈 마시기도 한다.

키우고 싶다면, 종자 파종을 해도 되지만 그보다는 보통 포기나누기를 하는 게 좋다. 비옥한 땅에선 어디라도 잘 자란다.

홀아비꽃대. 혼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애처로우면 이 여리고 고운 풀에도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외로워서일까.

산과 들에 피는 홀아비꽃대는 홀로 자라지 않고 서로 한 무더기씩 모여 산다. 사람 역시 함께 모여 사는 건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