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살림의 여왕' 마샤 스튜어트가 주식 내부자 거래 여부에 대해 허위진술한 혐의로 징역 5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복역 후에도 가택연금에 처해진 그녀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자신의 발목에 감긴 발찌를 내보이며 한탄했다. "성가시고 짜증나는 이 발찌를 그 누구도 차지 않길 바란다."

그녀가 말한 전자 발찌는 미국에서 범죄자를 수감하는 대신 사용하는 대안 감시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등장한 전자 감시 프로그램은 수감자가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함으로써 범죄자 관리에 드는 세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최근 여러 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마샤 스튜어트의 체험담에서처럼 전자 발찌는 파시즘적인 빅 브라더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영화 '체리쉬(Cherish)를 보면 마샤 스튜어트의 발언이 엄살인지 아닌지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아멜리에'처럼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고 광고하고 있는 영화 '체리쉬'. 하지만 광고문구만 보고 봤다가는 조금 후회할 만한 영화다. 낯선 배우들과 세련되지 못한 진행방식 때문에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는 전형적인 B급 영화라 불리는 게 오히려 어울릴 듯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원만한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소위 말하는 직장 내 왕따인 20대 중반의 컴퓨터 애니메이터 조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는 흘러간 팝송을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 조이는 '나타샤'라는 가명으로 60~80년대 올드 팝을 신청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올드 팝에 대해 쓸데없이 조예만 깊은 조이.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직장 회식 자리에서 자신이 흠모하던 남자 직원에게 자신의 음악관을 피력하며 친밀감을 쌓는 절호의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황홀한 순간도 잠시, 집으로 가던 조이는 자신을 몰래 미행하는 스토커에게 납치되고 만다. 스토커의 지시대로 거칠게 차를 몰던 조이는 경찰관을 치게 되고 음주운전과 뺑소니 혐의로 체포된다.

조이는 스토커의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결국 조이는 재판을 받을 때까지 감시 프로그램에 따라 전자 발찌를 차고 모처에 갇히게 된다.

영화는 조이가 어떤 방법으로 감시를 받게 되는지 친절하게 보여준다. 우선 발에 차는 전자 발찌는 GPS를 통해 조이의 행동반경을 추적하고 일정 거리를 넘어서지 못하게 감시한다.

두 번째 감시 방법은 음성 확인(Voice Verification) 시스템이다. 이 방법은 미개하고 간단한 방법이다. 전화를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된 자동음성이 들리면 거기에 답을 하는 것.

영화는 24시간 전자 감시를 당하는 조이가 감시 시스템 안에서 나름대로 삶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전에는 갖지 못했던 주변인들과의 친밀함을 느끼며 변모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발찌는 점점 그녀를 옥죄어 온다. 결국 발찌 프로그램 관리자의 배려로 진범을 추적해 나가는 조이. 그녀는 무기력했던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삶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절실하게 느끼며 발찌를 벗어 던지고 새롭게 인생의 한 가운데로 나아간다.

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신체 구속의 감시 발찌 형을 받게 되는 조이는 마지막 순간 발찌를 찬 발목에 망치를 들고야 만다. 발목이 부서지더라도 완벽한 해방을 원했던 조이가 바란 것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열망이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이민자들에게까지 전자 감시 발찌를 차게 해 논란이 되었다. 이 위험한 나라는 도대체 인권을 볼모로 무슨 가치를 지켜내려고 하는 것일까? 영화 속 올드 팝은 한없이 달콤하지만 인간에 대한 그들의 자세는 씁쓸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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