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구화는 전 세계 사회, 문화, 제도, 개인들 사이의 복합적인 상호연관의 정도가 크게 높아지는 과정이다.

교통과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맥루언이 언급한 지구촌(global village)처럼 모두 한 마을에 모여 사는 느낌을 갖게 된다.

결국 전지구화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관계가 국지적인(국가적인) 맥락에서 전지구적인 맥락으로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전지구화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영역은 물론이고 대중문화 생산 부문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지구화는 미국의 대중문화가 전지구적인 대중문화임을 분명히 해주고 있다. 문화의 전지구화는 문화의 미국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대중문화가 미국을 중심으로 전지구적으로 생산·유통되면서 전지구의 문화가 동질화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여기서 미국의 대중문화란 일본, 중국, 유럽 등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혼융되어 미국적 형태로 종합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지구화가 대중문화의 탈중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된 바 있다. 문화생산 중심이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로 옮겨가서 거기서 생산된 문화상품이 미국을 포함해 전지구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결국, 미국이외에 다른 국가도 대중문화 생산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중남미의 방송산업을 중심으로 문화생산의 거점이 다양화되는 현상이나 일부 국가의 자국 영화 시장점유율과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 등이 그 근거라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자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반영하는 문화적 혼종 현상(자국의 문화와 미국의 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문화형태를 발생하는)을 경험하게 된다는 견해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적 불균등성이 해소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전지구화가 진행되면서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배후에 거대한 동일 언어시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아온 홍콩, 인도 등의 영화산업이 위축되고 있음이 그 증거다.

문화생산의 탈중심화와 역문화제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중남미의 텔레비전산업도 미국 소비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확산에 기여하는 하부 문화제국주의에 불과하며, 미국내 동일언어권 시장 때문에 일부 수출된 것이 과대평가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 증가도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문화경쟁력)의 약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이 문화적 다양성 보장을 위한 스크린쿼터제도의 존재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영화산업의 구조적인 취약성이나 강고한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문화경쟁력) 등을 감안한다면 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해 온 스크린쿼터 제도를 축소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공론의 과정을 통해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우리 영화계가 시장점유율 50%를 넘어서는 등 전성기를 구사하면서도 과연 스크린쿼터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제대로 형성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외적 문화다양성의 보장에 스크린쿼터제도가 일정한 기여를 했지만, 미국외 지역영화나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도 생존하는 내적 문화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 제 역할을 했는지, 또는 영화산업 규모의 팽창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영화산업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등의 의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스크린쿼터제도 축소논쟁을 계기로 영화계는 좀 더 적극적이고 겸손하게 국민들에게 스크린쿼터제도의 의미를 알리고, 영화산업의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가시적인 노력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용성 한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