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숲 수놓을 화사한 연보라꽃잎

처음 벌깨덩굴을 보았을 때 아주 신비하고도 재미있어 친근감이 느껴졌다. 서지도 눕지도 않은 줄기에 고개를 들고 줄줄이 매어 달린 고운 연보라빛 꽃잎.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붕어처럼 함초롬히 피는 꽃잎 안에는 흰 무늬와 붉은 점, 그리고 수염같이 보송한 털이 박히어 여간 예쁘지 않다.

깊은 산골에 감추어진 때묻지 않은 보석을 발견한 듯 만났던 벌깨덩굴이 지금 광릉의 숲에는 지천으로 자란다. 복수초도, 제비꽃도 얼레지도 모두 잠든 겨울 숲 속을 메우고 있다.

벌깨덩굴은 꿀풀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의 산지에서 자라며 중국의 북부, 일본 등에도 분포한다. 꿀풀과에 속하니만큼 줄기는 물론 네모지다.

화사한 꽃잎을 가진 식물들은 햇볕을 좋아해 대개 숲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살지만, 벌깨덩굴은 볕이 드는 곳에서도 그늘진 곳에서도 무리 지어 잘 자라니 여간 대견스럽지 않다.

어정쩡하게 자라는 줄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새로 나와 바로 선 가지에는 잎새들만 마주보고 달린다. 꽃이 달리는 가지는 옆으로 누워 있으며 그 중에는 가지를 땅에 늘어뜨리고 새로운 뿌리를 내려 분가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래서 벌깨덩굴은 딱 부러지게 키 높이를 측정하기 어렵다. 무리지어 자라는 곳에 서보면 어른 무릎 높이를 넘는 경우는 없다.

마주 본 잎새들은 아래가 둥글게 휘어진 삼각형이다. 가장자리에는 둥근 톱니가 있고 잎 표면은 주름이 진 듯하고, 위에 달리는 잎일수록 잎자루가 짧다. 꽃은 마디 사이에서 달린다.

5월께 모두 한 방향에서 달리는 꽃은 개화기가 길어 비교적 오래 볼 수 있다. 길이는 3~4cm쯤 되고 벌어진 한쪽 끝은 위아래가 다시 둘과 셋으로 갈라진다.

전체적으로는 연보라색 꽃이지만 잎술처럼 벌어진 부분에는 흰색을 띠며 진한 점도 있다. 여름에 익는 열매는 수과로, 길이가 3mm정도밖에 안돼 아주 작은 편이다.

왜 이름이 벌깨덩굴일까? 어떠한 문헌에도 그 유래가 나와 있지는 않다.

내 생각으로는, ‘덩굴’은 누워 자라니 붙였을 게고 ‘깨’는 잎이 깻잎을 닮은 때문인 듯하고 ‘벌’은 꽃이 향기롭고 꿀도 많아 벌이 많이 찾아오므로 이름에 첨가되지 않았나 짐작된다.

한자로는 지마화(芝麻花)라 한다. 학명 가운데 속명 미하니아(Meehania)는 미국의 식물학자 토마스 미한의 이름을 따서 붙였고 종소명 우르티시폴리아(urticifolia)는 잎이 쐐기풀 종류를 닮았다는 뜻이다.

벌깨덩굴은 아주 유명하고 특별한 쓰임새를 가진 식물은 아니지만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봄에 나는 어린 순이나 잎을 따서 나물로 식용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주로 살짝 데친 후 무쳐서 먹는다.

약용으로는 한방에서 널리 쓰이지 않는다. 다만 민간에서 강정제나 여자들의 대하 증상에 다른 약재와 함께 사용된다.

또 꿀이 많은 밀원식물이며, 최근에는 본격 재배되지 않지만 관상용으로 가치가 있는 것으로도 관심을 모은다.

낙엽수의 하부 식재용으로 알맞으며 반그늘진 곳의 지피식물로도 좋다. 옆으로 뻗는 줄기를 이용해 넓은 화분에 초물분재로 가꾸어 감상하여도 제격이다.

이밖에 식물 지상부를 잘라 염료용으로 실험했더니 효과가 있더라는 기록도 있다.

벌깨덩굴이 연보랏빛 꽃등을 환하게 밝힐 봄 숲이 기다려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