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14 / 그리스도의 승리 - 시오노 나나미 지음 / 김석희 옮김 / 한길사 발행 / 1만2,000원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니시오스는 ‘고대 로마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마를 강대하게 만든 요인은 종교에 대한 사고방식이었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다신교였다. 최고신으로 숭배한 유피테르 등 많을 때는 신의 수가 3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디오니시오스에 따르면 고대 로마인의 종교관은 광신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배타적, 폐쇄적이지 않았고 이교도나 이단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로마시대에 이민족과의 전쟁은 많았으나 종교전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관용’과 ‘포용’에 바탕을 둔 다민족 융합체를 이끌게 했고 오랫동안 로마제국을 유지시켜온 정신적 토대가 되었다.

여기에 균열을 가져온 것이 일신교인 기독교의 대두였다. 로마의 신과 기독교의 신은 완전히 다르다.

물론 다른 종교도 인정하는 로마인의 관용 덕에 기독교조차 초기엔 다신교 중의 하나로 수용했지만 로마제국의 정신적 기반인 다신과 신전 등을 부정하는 기독교와는 필연적으로 긴장관계와 충돌이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트라야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세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받고 순교한 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하지만 로마제국의 장기화로 인한 혼란과 불안이 가중될수록 구원과 내세를 앞세운 기독교는 시민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심지어 황제, 황후와 원로원 의원들조차 기독교를 믿기 시작했다. 이제 기독교의 융성은 시대의 대세였다. 4세기는 기독교와 ‘이교’로 간주된 로마의 다신교와 마지막 항쟁 시기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4권-그리스도의 승리’는 바로 이 시기를 다룬다.

전환시대에 살게 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의 길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흐름을 탈 것인가, 흐름을 거슬를 것인가, 아니면 흐름에서 발을 뺄 것인가” 4세기에 등장한 로마 황제와 다양한 군상들은 이 길들 중 하나를 선택하며 처세의 명암을 겪는다.

제1부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이어 황제에 오른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의 이야기다. 폐쇄적이고 내성적인 그는 불안감 탓에 로마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동방의 전제 군주같은 ‘환관 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해선 아버지에 이어 우대정책을 폈다. 국고를 들여 교회를 지어주고 성직자들의 세금도 면제해 주었다. 오히려 로마의 신들을 배척하기도 했다. 일신교가 로마제국을 지배하도록 문을 연 것이다.

제2부는 이에 반하여 시대흐름에 역행한 율리아누스 황제의 행보를 그린다. 그는 반기독교 정책으로 훗날 ‘배교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하지만 나나미는 다르게 해석한다.

“율리아누스의 반기독교 정책은 ‘모든 신앙의 존재를 공인’하는 로마정신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다”라고. “어떤 종교든 관계없이 각자 원하는 종교를 믿고 거기에 수반되는 제의에 참가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받는다. 어떤 신이나 어떤 종교라도 명예와 존엄성이 훼손당해서는 안된다”는 밀라노 칙령 상태로 돌아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회가 누려온 특전을 없애고 이교로 배척당한 로마 다신교의 부흥을 꾀한 30세 황제의 실험은 시대와의 고독한 싸움이었다. 그는 페르시아전쟁에 참전했다가 31세의 나이로 전사한다. 로마제국의 기독교 국가화는 점점 빨라지고 격렬해졌다.

제3부는 명석한 두뇌, 세련된 언어 구사 등 기독교로 보면 군계일학과도 같은 암브로시우스 주교의 활동상을 담는다. 요비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 그라티아누스, 테오도시우스 황제들은 이제 역사무대에서 조연으로 밀려난다.

“일단 기독교도가 되면 황제라 해도 한 마리 양일 뿐이다. 양과 양치기의 승부는 뻔하다. 황제가 그 지위에 앉는 것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신이 인정했기 때문이므로 아무리 황제라 해도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는 주교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율리아누스의 반기독교 정책은 모두 폐기되고 마침내 그리스도는 로마 다신교와 싸움에서 승리했다. 테오도시우스는 모든 신전을 교회로 바꾸라고 칙령을 내렸고 기독교 이외의 종교는 이교(異敎)가 아닌 사교(邪敎)로 간주되었다.

로마는 왜 멸망했을까?

이민족의 침입, 경제 생산성의 약화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기독교의 대두도 한 원인이다. 관용과 포용을 기반으로 한 다신교의 로마가 기독교 세상으로 바뀌면서 체제 기반이 뿌리채 흔들린 것이다.

최근 이슬람과 유럽 기독교의 문명충돌도 사실은 일신교끼리의 패권다툼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신교가 낳은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나나미도 책 속에서 “다신교의 세계였던 고대에 유일한 일신교는 유대교였지만 선민사상을 가진 유대교도는 남을 유대교로 끌어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포교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종교는 오직 기독교뿐이다”이라고 비판의 속내를 드러낸다.

전 15권으로 완간될 ‘로마인 이야기’는 이제 종착역을 한 발 앞두고 있다. 로마 제국도 분열과 멸망의 문턱에 와 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