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비기나무

한 번 보면 눈에 ‘딱’ 띄고 ‘헉’ 감탄해야만 -시쳇말로 엽기적일 정도로 튀어야만- 좋아하고 두 번 보면 벌써 싫증을 느껴 식상해 하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보편적인 정서이다.

하지만 사람이나 사물이나 혹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이나 서서히 빠져들게 하여 은근한 매력을 웅숭깊게 발산하는 그런 멋스러움이 진미인 것 같다. 순간의 아름다움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 것에 대해 ‘너도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구나’ 하고 이야기하더라도 나 역시 어쩔 수 없다.

순비기나무는 바로 그런 나무다. 바닷가에 지천으로 흔하게 자라는 모습에 심드렁하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알수록 새록새록 넘쳐나는 그 개성에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

우선 서식하는 곳이 남다르다. 바닷가에 산다. 물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바닷가 모래밭 혹은 모래땅 위의 나지막한 바위틈에서 자란다.

주로 서해안이나 남해안 혹은 그곳의 섬에 둥지를 튼다. 자라는 모습 또한 특이하고, 나무치고는 키가 작다. 두 뼘쯤 되는 높이로 자라지만 옆으로 뿌리줄기가 길게 뻗으며 퍼져 나가 대개는 커다란 무리를 이룬다. 소복한 덤불처럼 혹은 보랏빛 카펫처럼.

분백색이 도는 잎엔 은은함이 있다. 잎 전체에 회백색 흰털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닷가의 세찬 바람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까지 비교적 긴 시간 피어있는 작은 보라빛 꽃들 속에서 튀어나온 수술이며 이러저러한 색의 변화가 여간 재미난 게 아니다. 꽃이 지고 나면 이내 구슬처럼 둥글고 딱딱한 열매가 달려 검자주색으로 익는다.

순비기나무란 이름이 왜 붙었을까? 나의 상상력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는데, 우연히 ‘순비기’는 ‘숨비기’란 제주도 방언에서 유래했고 이는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을 들었다. 따라서 바닷가에 살고 뿌리가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 때문에 순비기란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제주도 방언을 확인해보진 못했으나, 순비기나무의 자라는 모습과 그 의미를 연상하며 이내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이름조차 재미난 나무다. 한자로는 만형(蔓荊)이라 하고 만형자나무, 풍나무, 숨베기 나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황해도 이남의 바닷가에 자라고, 이웃 나라 일본, 중국에도 분포한다.

바닷가에서 자라니 해풍의 영향이 있는 지방에선 땅을 덮는 지피(地被)소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상록성 식물이니 월동에 큰 문제가 없다면 요긴하게 활용된다. 나무에 향기도 있어 허브식물로 권하기도 한다. 솔향기와도 같은 내음이 나는데 향을 맡다보면 머리가 시원해진다. 목욕탕에 놓아 향료로 쓰이기도 한다.

한방에서 두통약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헛말은 아닌 듯하다. 또 눈이 침침하고 충혈되거나, 신경성 두통 등 여러 가지 통증, 타박상 등 비교적 많은 증상에도 처방된다. 이밖에 밀원식물로도 알려져 있다.

마음이 답답해지거든, 순비기나무가 군락을 이룬 바다로 한번 가보자. 탁 트인 푸른 바다도 바라보고, 그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순비기나무의 푸른 향내도 맡으면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리지 않을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