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풍각쟁이야 / 장유정 지음 / 황금가지 발행 / 2만 2,000원

오빠는 풍각쟁이야 무어 오빠는 심술쟁이야 무어
난 몰라 난 몰라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고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고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이하 생략)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주인공 진태, 진석 형제가 돈독한 우애를 나누며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펼쳐진 초반부에 배경 음악으로 깔린 ‘오빠는 풍각쟁이’(박향림 노래, 1938년 작)의 첫 소절이다.

이 노래는 여가수 박향림의 간드러지는 콧소리 창법과 해학적인 가사 내용으로 발매 당시 큰 인기를 누렸는데, 블록버스터 영화 ‘태극기…’에 삽입되면서 6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한번 대중의 사랑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곡이 묘사하는 1938년의 풍경은 우리 머리 속에 각인된 일제 말기의 살벌한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화자인 여동생으로부터 투정을 받는 오빠는 당시 젊은 여성들의 일등 신랑감으로 꼽히는 ‘샐러리맨’.

그는 시간만 나면 명동극장(당시엔 ‘명치좌’로 불림)으로 공연을 보러 다니고, 술집을 제 집 드나들 듯할 정도로 여유로운 삶을 즐긴다. 불고기, 떡볶이 등 당시로선 고급 음식도 맘껏 먹고 다녔다.

물론 이 노래의 주인공인 오빠가 일제 하의 보편적인 젊은이 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공감을 얻고 웃음을 자아내는 데 성공한 것은 당시 세태를 상당 부분 반영한 덕분이 아닐까.

동명의 제목을 달고 최근 출간된 ‘오빠는 풍각쟁이야’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의 대중 가요가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고 또한 어떤 매력 때문에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부제도 ‘대중 가요로 본 근대의 풍경’이다.

가령 그 시절 이미 오빠 부대가 가수들을 쫓아다녔고, 투표를 통해 최고 인기 가수를 뽑는 행사가 열렸으며, 기획사들은 스타성이 뛰어난 가수들을 발굴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다고 하면 선뜻 수긍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저자가 철저하고 방대한 자료 수집과 고증, 분석을 통해 밝혀낸 사실 가운데는 오늘의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것들이 적지 않다. 몇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자.

김억은 김소월의 스승으로 잘 알려진 시인. 그런데 그가 대중 가요 작사자로도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저자의 연구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일제 시대 가요계에서 정체가 불분명했던 김포몽이라는 작사자가 김억과 동일 인물임이 드러난 것. 그는 레코드에 취입된 81곡의 가사를 썼다.

또한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지는 ‘왕 여인’의 정체도 저자가 밝혀냈다. 주인공은 최초의 기생 출신 대중 가수로 오늘날 이효리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왕수복.

그녀는 평양에서 공연을 한 뒤 비행기를 타고 경성으로 날아가 다시 저녁 공연을 할 만큼 인기절정의 대중 스타였지만 가슴 속으로는 늘 소설가와의 결혼을 꿈꿨던 것으로 전해진다.

작곡가 홍난파가 재즈 연주에 심취했었다는 사실도 새롭다. 그는 한국 최초로 ‘코리안 재즈 밴드’를 결성해 1926년 YMCA에서 재즈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가 맡았던 악기는 피아노다.

저자가 10년의 작업 끝에 내놓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함 속에서도 당시 대중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대중 가요가 그들의 삶을 위무하고 북돋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뽕짝으로 폄훼되기도 하는 현대 대중 가요의 원류가 온전히 평가 받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편 저자는 국내 최초로 대중 가요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소장 국문학자다. 20대 시절 가수를 지망해 가요제에 나가기도 했던 독특한 이력 또한 눈길을 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