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작약

꽃이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럴까. 우선 꽃이란게 인공으로 도저히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지만, 보고 싶어도 쉽사리 보기 어려워지면 더욱 간절함이 쌓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백작약도 그런 식물 중의 하나다. 늦은 봄 깊고 깊은 숲에 가야만 만나는 백작약. 인적이 거의 없는 깊은 산골짜기, 길이라도 잃어 이리저리 헤메다가 문득 조우하는 백작약

. 뭇 풀들이 모여사는 숲에서 고만고만한 키에 쑥 하니 꽃대를 올려 탐스럽게 핀 백작약의 모습을 볼 때 적어도 그 순간에 느끼는 감동만큼은 그 어떤 식물의 만남과도 비견할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이다.

백작약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자생한다.

키는 보통 허벅지 높이 정도까지 자라고 줄기 중간에 부정형으로 세 개씩 두 번 갈라지는 잎 서너 장이 어긋나게 달리지만 전체적으로는 그 줄기 끝에 달린 아름답고 순결한 꽃송이를 받쳐주는 듯한 느낌이다.

꽃은 더없이 곱다. 5~7장의 유백색 혹은 백색의 꽃송이가 약간 끝을 오므려 마치 작은 항아리를 만들듯 붙어 있고 그 속에는 노란 수술이 아름답게 안겨있다.

백작약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누구나 다 아는 풀인 양 맞장구친다.

약으로 많이 쓰이며, 꽃이 예뻐 집 마당에 여러 포기 심어 가꾸고, 꽃 색깔은 여러 가지이고(자주색, 분홍색 등이 많지만), 이 꽃들 중에 특별히 흰색인 작약을 백작약이라 부른다고 일반인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좀 차이가 있다. 그것은 겹꽃잎을 가진 작약 중의 한 품종이지 우리가 식물학적으로 말하는 숲 속의 백작약이 아니다.

게다가 산에서 진짜 백작약을 만나더라도 그저 산작약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산작약은 백작약과 비슷하게 생겼어도 꽃의 빛깔이 아주 진한 분홍색 식물을 따로 지칭하는 말이니 백작약을 산작약이라 부르면 안 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 산작약을 꽃이 붉다하여 적작약이라고 혼동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이 또한 잘못이다.

그러나 백작약 구별에 혼동을 가중시킨 것은 한방의 생약이름이다. 한방에서 작약을 약으로 사용할 때 뿌리의 껍질을 벗겨 쓰는데 그 빛깔이 희다보니 생약명을 백작약으로 했다.

반면에 뿌리껍질을 벗기지 않은 약재는 적작약이라고 불렀다. 그러니 우리나라 산에 자라는 백작약, 산작약을 헷갈리게 하여 구별의 어려움을 가져왔다.

기왕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말하면, 작약과 모란(목단이라고도 한다)의 관계이다.

두 식물 모두 유사한 집안의 형제이니 대부분 혼동한다. 그러나 비학술적인 구분이긴 해도 작약은 풀로서 약재로 재배되고, 풀이 아닌 나무 즉 목본성인 것은 모란이라고 생각하면 구별하기 쉽다.

한방에서는 백작약을 많이 이용한다. 생약명은 강작약 또는 초작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에서 백작약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이 풀 자체가 자라는 곳을 가리기도 하지만 약초를 캐는 분들이 집중적으로 탐내기 때문이다.

자연의 가초박명(佳草薄命)이라고나 할까. 사실, 산삼도 아주 옛날에는 그리 귀하지 않았다고 하니 약으로의 특별한 가치로 인해 백작약을 보기 어려워진 것이 이해는 가지만 안타깝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