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 등 뉴미디어 급부상, 방송 3사 아상 위협

“시리아전 축구 경기를 공중파TV에서 볼 수 없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중계권을 독점한 그 회사가 너무 돈만 밝히는 것 아니야?”

지난달 축구 아시안컵 예선 한국 대 시리아전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3사를 통해 중계되지 못하자 일반인들 사이에 터져 나온 볼멘소리다. 올해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이미 전 국민적인 관심사가 돼버린 태극전사들의 경기를 쉽게 시청할 수 없게 된 축구팬들로서는 당혹감과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언뜻 축구 한 경기만을 둘러싼 방송사들 간의 갈등으로만 비쳐진 이 사건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매체 간의 또 다른 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급부상하고 있는 케이블TV 등 뉴 미디어와 지상파 등 올드 미디어 간의 힘겨루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일회성 사건으로만 치부해 버릴 수도 있는 이 사건은 미디어 시장의 격변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포츠 중계를 둘러싼 갈등은 쌍방 간 전투의 시발점이다.

지상파 방송에 대한 케이블TV의 도전

“예전 같으면 케이블TV에서 축구 국가대표 간 주요 경기를 중계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종합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IB스포츠의 구동회 이사는 “케이블 채널인 Xports를 통한 이번 시리아전 중계가 케이블TV로 중계된 사실상 첫 축구 A매치일 것”이라고 평했다.

예전에도 베트남전 등 아시안컵 축구 예선에서 국가대표 간 경기가 케이블TV를 통해 중계된 적은 있었지만 이 때는 팬들의 관심이 낮아 지상파 방송국에서 아예 중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시리아전은 경우가 다르다. 축구팬들의 열기가 한층 고조돼 있었고 지상파 방송국에서도 당연히 중계 대상이라 여겼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이 좌절된 것은 결국 중계권 ‘가격’ 때문이다.

이번 시리아전의 중계 판매권은 시리아축구협회가 갖고 있었다.

IB스포츠는 이를 이미 사들여 국내 중계 권리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가격협상이 결렬되면서 계열사인 Xports를 통해 방영키로 한 것. 국내 지상파 방송 3사는 그동안 순번에 따라 주요 경기를 방송해 왔는데 이번 차례였던 SBS가 IB스포츠와의 중계권 협상에 그다지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위협받는 지상파 방송3사의 기득권

인터불고 그룹의 17번째 계열사인 IB스포츠가 국내 체육계와 방송가에서 처음 관심을 끈 것은 지난해 1월 메이저리그 야구 독점 방송권을 2008년까지 확보하면서부터다.

이후 IB스포츠는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내 독점방송권을 따낸 데 이어 국내 지상파 방송3사와의 중계권 재판매 협상이 결렬되면서 케이블채널 Xports까지 인수했다. 이어 2012년까지 아시아축구협회의 주요 경기 중계권을 패키지로 사들이고 지난해 10월에는 KBS 국내방송권까지 거둬들였다.

그럼 왜 여러 스포츠단체나 협회들은 왜 기존의 지상파 방송3사를 제쳐두고 신흥 회사인 IB스포츠와 계약을 맺었을까? 이유는 단 하나, ‘가격’ 이다.

그동안 지상파 방송3사는 스포츠중계권 구입 협상을 위해 ‘코리아 풀’이라는 3사 연합체를 두고 공동협상을 벌이거나 단체로 의견을 조율해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스포츠협회나 단체들의 불만이 상대적으로 커져 온 것이 현실.

해마다 TV 중계권료가 떨어져 왔기 때문이다. “중계권을 판매하는 스포츠협회들은 방송3사의 카르텔 때문에 정상협상이 안 된다고 생각해 온 것 같아요.” 구동회 이사는 “IB스포츠가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를 해주니까 협회가 흔쾌히 응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프로농구인 KBL의 중계권료는 2004시즌 40억원이었지만 지난 시즌에는 34억원으로 6억원이 줄어들었고 프로야구인 KBO의 중계권료도 같은 기간 90억원에서 72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이는 최근 10여 년간 줄기차게 중계권료가 폭발할 정도로 치솟은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등 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 현상이라고 이들은 강조하고 있다.

올드미디어를 위협하는 뉴미디어들

중계권을 기존의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IB스포츠가 사들일 수 있었던 것은 미디어 환경의 변화 덕도 크다. 즉 지상파 방송 말고도 인기 스포츠 경기를 중계할 뉴 미디어들이 많이 등장했고 이들 매체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아전 중계에서 나타난 케이블TV 시청률은 무려 15.1%. 이는 지난해 11월 이종격투기 K-1의 최홍만 출전경기때 기록한 10.39%를 무려 5%P 가량 뛰어넘는 수치다. 특히 후반 종료 3분전 순간 시청률은 22.1%에 달했다.

여기에 다음과 네이버, 야후 등 인터넷 포털을 통한 시청자 수가 230만명으로 파악됐고 위성DMB 시청자 수 5만명까지 더하면 전체 시청률은 25% 정도. 물론 지난달 벌어진 빅매치였던 한국-덴마크전 축구 경기의 지상파 중계 시청률 32.5%보다는 못미친다. 하지만 웬만한 공중파 시청률과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시청률에서도 나타나듯 이들 뉴미디어는 과거보다 크게 성장했고 그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는 추세다. 또 젊은이들의 뉴 미디어 선호는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사회의 주력 세대로 잡을 시기에는 뉴미디어의 힘이 상대적으로 더 세질 전망이다.

IB스포츠의 이희진 대표는 “여기에 이번 월드컵을 기점으로 상용화될 지상파DMB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이 가능한 와이브로까지 더해지면 앞으로 기존 올드 미디어인 지상파 TV에 대한 의존율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설명한다.

스포츠 중계 분쟁과 관련, 현재 IB스포츠는 KBL 경기는 SBS에, 또 주요 축구 경기는 KBS에 중계권을 재판매한 상태. 때문에 주요 경기들이 지상파에서 방송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월에 벌어질 예정인 한국과 이란전 등 몇몇 경기는 여전히 IB스포츠가 중계권을 독점하고 있어 이때 역시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재판매 협상이 결렬되면 시리아전 중계 같은 사태는 얼마든지 재발될 수 있다.

스포츠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이번 파문은 앞으로 더욱 더 다양해지는 미디어들 간에 벌어질 컨텐츠 확보 전쟁의 한 단면”이라고 평하고 있다.


박원식 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