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 양용기 지음 / 평단문화사 발행 / 1만5,000원

건(축)물 하면 어떤 관념이 먼저 떠오르는가. 부의 증식 수단, 부동산 투기 대상, 또는 그로 인한 빈부 격차의 상징물, 이런 말들이 퍼뜩 뇌리를 스치는 게 요즘의 우리네 현실이다.

도처에 솟구치는 아파트와 빌딩들. 주거와 업무를 위한 공간이라는 본래적 의미에서 한창 벗어난지 오래다.

짓기만 하면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고 사들이기만 하면 값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건(축)물은 대박을 터뜨리는 첩경이라는 믿음은 그래서 콘크리트 구조물처럼 더욱 공고해진다.

하지만 스위스 근대 건축운동의 이론가인 기디온이 남긴 유명한 명제처럼 “건축은 식물처럼 연약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존재의 이유’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에게 집이 필요했던 최초의 이유는 거친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있었다.

터를 잡고 벽을 쌓고 지붕을 올려 만든 집은 그러나 당초에는 예기치 못했던 결과를 불렀다. 그것은 곧 ‘분할체’로서의 성격이다. 집은 옥내와 옥외를 나누는 공간적인 분할에서 훨씬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계층적 분할을 낳았다.

“커튼을 치는 순간, 그 공간은 벽을 갖게 된다”고 말한 독일 출신의 건축 거장 미스 반데 로에의 ‘커튼 월(curtain wall)’ 사상은 그에 대한 절묘한 비틀기다.

독일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귄터 베니쉬로부터 교육 받았고 현재 안산 1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공간과 건축의 모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간은 애초에 하나였고 우리가 벽을 쌓는 순간부터 그것이 나누어지기 시작한다. 공간을 다시 하나로 만들면 그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

저자는 미국 건축가 루이스 칸의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라는 명제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말은 건축물 안에는 단순한 건축 이상의 의미가 내재돼 있음을 뜻한다. 그것은 철학이자 사상이요, 또한 시대의 조류이기도 하다.

바꿔 말하면 건축물은 벽돌과 철골 등 수많은 자재를 조합해 만들지만 보다 중요한 요소는 건축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책은 ‘형식’으로서의 건축물을 해부하는 이상으로 ‘내용’이라는 건축가의 메시지를 밝혀내는 데 공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건축물은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멀리는 ‘판테온 신전’, ‘노트르담 성당’에서 가까이는 ‘서울역’과 ‘삼일 빌딩’까지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건축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유명 건축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건축의 총지휘자 임호텝, 백색 건축의 마술사라는 칭송을 얻은 리차드 마이어, 큐비즘을 건축에 적용한 피터 아이젠만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의 삶과 건축관의 소개가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언뜻 딱딱한 건축 전문 용어들이 읽기를 방해하는 듯 보이지만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 기우는 어느새 사라지고 건축의 본질과 역사에 도달한다. 건축학도들의 입문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저자는 건물이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더라도 사람을 위한 건물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강조한다.

‘인간을 위한 건축’, ‘자연과 조화되는 건축’, 이 두 가지가 건축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단 한 개의 메시지로 압축된 듯한 요즘의 건물 앞에서 현기증만 느끼게 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