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유명 백화점 화장실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외제자동차 판매원 정순정. 영화 ‘오로라 공주’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녀의 범죄 행각을 추적하게 만든다. 그녀가 왜 무고해 보이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야만 했는지, 악마같은 그녀는 점점 실체를 드러낸다.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오로라 공주’는 영화배우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이라는 사실로 화제를 모았지만 실질적으로 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은 크게 끌지 못했던 작품이다. 그런데 최근 이 영화가 종종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바로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 어린이 성범죄 때문이다.

영화는 어린이 성범죄 피해자 가정이 얼마나 큰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러한 고통으로 인해 결국 복수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정한 복수의 대상이 예사롭지 않다.

그 이전 ‘친절한 금자씨’가 유괴범 한 명에게만 철저하게 복수를 한 것과 달리 ‘오로라 공주’ 정순정은 보다 광범위한 복수를 한다. 한 마디로 어린이 성범죄를 저지른 범인뿐만 아니라 성범죄를 양산한 사회도 그녀의 복수 대상인 것이다.

친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딸을 학대하는 계모, 아이의 안전은 뒤로하고 남녀상열지사에만 관심이 있는 불륜관계의 중년 남성과 ??은 여자, 돈 몇 푼 때문에 어린 아이를 태워주지 않은 택시기사, 교통사고 원인제공자이면서도 여자운전자라는 이유로 되레 주인공을 몰아세우는 ‘싸가지’ 없는 운전자, 성범죄자를 정신이상자로 변호해 중형을 면하게 해준 잘난 변호사.

이들 때문에 정순정은 허울만 좋은 법의 심판을 뒤로하고 잔인한 개인의 심판을 선택하게 된다.

누가 정순정을 범죄자로 내몰았는가, 왜 금자씨가 ‘친절’해져야만 했는가.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오로라 공주’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정순정을 범죄자로 내 몬 것은 결국 극악무도한 성범죄자 때문만이 아니라 어린이 학대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부모,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남성, 진실보다 금권으로 휘둘리는 법, 이 모든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인 셈이다.

이 영화를 한갓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 영화로 치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사회에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지기 때문이다.

어린이 성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리자 우리 사회는 부랴부랴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법을 생각해 내느라 안달이다. 전자 발찌에서부터 화학거세까지.

재범률이 높고 주변인에 의한 범죄가 많은 성범죄에 대해 지금보다 강력한 처벌을 해야하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로라 공주’가 복수한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그것은 바로 범죄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오히려 몸가짐을 잘하라고 호통을 치거나 아름다운 꽃을 만져보고 싶은 게 섭리라며 가해 남성을 옹호하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더 많은 금자씨들이 친절해져야 하며 얼마나 많은 오로라 공주들이 요술봉을 흔들어 대야 하는 것일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