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나물

春來不似春. 다 왔다고 생각한 봄이 아직도 웬일인지 머뭇거린다. 봄볕이 따사롭다가도 이내 찬기운이 섞인 꽃샘 바람이 분다. 수목원 양지바른 곳에선 풍년화도 복수초도 그리고 제비꽃도 새초롬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건만 아직은 힘겹다.

그러던 차에 지난 주말 남쪽바다 큰 섬으로 식물조사를 떠났다. 그곳에서만 분포하는 양치식물이 포자를 달고 있을 시점이고 더욱이 아직 다른 풀들이 자라기전에 찾아가야 상록성인 이 식물들이 눈에 잘 띄기 때문이었다.

보고픈 식물들을 다 찾아낸 수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막 시작한 꽃잔치가 눈을 배부르게 했다. 붉은 동백꽃은 절정이고 노란 개나리와 하얀 백목련은 막 봉우리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산에 핀 연분홍 진달래는 언제 봐도 가슴을 뜨겁게 했다. 조사에 몰두하느라 끼니 때를 놓쳐 진달래 꽃잎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랠 정도였으니, 배를 채우는 데 이보다 더한 잔칫상이 있으랴.

그렇게 꽃소식이 바람에 실려오는 남도의 들녘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키작은 꽃이 있다. 광대나물이다.

생각해보면 광대나물은 남녘에선 봄이 오면 때론 겨울에도 볕이 가득한 곳이면 의례히 올망졸망 피어 있는 꽃이건만 왜 이제야 소개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속에 혹시 그 꽃을 하찮게 여긴 편견이 있었던 게 아닐까. 지천에 보이는 풀이지만 독특하게 생긴 꽃이라 많은 이들이 이름 한번 궁금했을 터인데도 말이다.

사실 광대나물은 눈여겨보면 여간 개성있고 고운 것이 아니다. 숲 가장자리 풀밭이나 건조하지 않은 길 자장자리, 빈터에서 자주 보인다. 보통은 한 뼘 높이로 자라지만 늦 봄까지 훌쩍 크기도 한다.

주름이 자글한 잎은 본래 마주 나는데 위쪽에선 자루없이 크게 달려 줄기를 완전히 감싼 듯 보인다. 갓난 아기 턱받이처럼. 이 부분이 광대의 옷을 닮아 이름이 광대나물이 되지 않았을까(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북한에선 작은잎광대수염이라 하고, 흔히 코딱지나물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니 나름대로 곱다고 생각하고 있을 광대나물 입장에서는 ‘광대’도 좀 그렇거니와 ‘코딱지’라는 이름마저 붙으니 자존심이 상할 듯도 하다.

접골초, 진주연, 작은잎꽃수염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봄이면 꽃분홍색의 길쭉한 꽃들이 달린다. 작은 뱀들이 고개를 들어 잎을 버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느낌은 사뭇 달라 아주 귀엽고 예쁘다.

이름 뒤에 ‘나물’을 붙였으니 연한 어린 순을 나물로 먹는다. 약으로도 사용하는데 보개초(寶蓋草)란 이름으로 타박상이나 코피를 멎게 하는 등 여러 증상에 처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봄 햇살을 머금어 다복하니 피어 있는 모습이 좋아 옮겨 심고 싶어도 허사이기 쉬우니 함부로 캐갈 일은 아니다.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니 이미 꽃이 피었다면 여름을 기다려 씨앗을 얻으면 된다.

하지만 광대나물은 봄 들녘에 가장 잘 어울린다. 작은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본 누군가가 아래쪽 꽃잎들이 마치 혀를 쑥 내밀어 ‘메롱’하는 듯하게 보인다고 하여 나도 한번 유심히 보았다. 그러고 있노라니 나 스스로 유쾌해져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면 광대나물인 이유가 잎모양이 아니라 이렇게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봄바람에 살랑살랑 춤추는 광대나물이 다시 그리워진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