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문화지도 / 다이앤 애커먼 지음 / 작가정신 발행 / 2만 2,000원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독특한 글쓰기를 지향한다. 미국 코넬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이 여류 시인은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동물의 심리·감각·행동에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덕분에 그가 펴낸 여덟 권의 시집 한 켠에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우러져 뭐라 장르를 따지기 힘든 여러 권의 저작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국내에도 재작년 번역 출간돼 호평을 받은 <감각의 박물학>은 특유의 ‘경계 없는 글쓰기’가 도달한 경지를 뽐낸 대표작이다. 저자의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강렬한 호기심”이 이번엔 인간의 두뇌에까지 닿았다.

글쓴이의 이력을 훑어본 일 없이 <뇌의 문화지도>를 편 독자는 당혹스럽다. “반짝이는 존재의 둔덕, 쥐색 세포들의 의회…” 운운하며 뇌를 은유하는 첫 페이지를 시작으로 상당 분량을 넘긴 후에도 독자는 ‘대체 뭔 소리 하려는 건지’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인지과학·신경학 분야의 최신 이론, 문학·영화·음악에 대한 감상, 신변잡기 등 방대한 화제를 넘나드는 문장의 이음매 곳곳이 헐거운 까닭이다. 신경학의 표현을 빌자면 서로 신호가 안 맞아 자극이 잘 전달되지 않는 뉴런들처럼.

관련 분야에 일가견이 있거나 영어 원서를 보는 독자에겐 저자가 과학적 이론을 설명할 때 즐겨 쓰는 문학적 비유의 부정확함이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다. 워싱턴 포스트(WP) 서평기자는 애커먼이 전두엽(frontal lobe)을 자기만의 조어인 ‘thinking cap’이라 쓴 것을 황당하게 여긴다.

이래저래 제목이 표방하는 ‘지도’의 체계성과 정교함이 쉽게 와닿지 않는다 (원제를 그대로 옮기자면 ‘마음의 연금술’이지만). <감각의 박물학>에서 보여준 명민함이 세월의 흐름(두 번역서의 원작은 13년 터울이다)에 무뎌진 탓일까. 혹 저자가 축적한 뇌 과학 지식이 아직은 미진한 때문일까.

그럼에도 이 책은 독자에게 지적 혹은 정서적으로 독특한 매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선 소재가 뇌 아닌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나를 나이게 하는 의식의 원천인 뇌. 의학도나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고도로 발달한 ‘쥐색 세포들의 의회’가 자아를 쥐락펴락한다는 최근 연구 성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애커먼은 이 분야에 대한 녹록치 않은 지식과 문학·미학·생물학 등을 아우르는 박학함을 무기로 어렵고 혼란스러운 이론들을 이야기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해설에 동원된 무수한 사례가 늘 적확한 건 아니지만 책은 읽는 이에게 쉽고 제법 든든한 길라잡이 노릇을 한다.

전문적 연구 성과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 쓴 책은 물론 많다. 뇌 과학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사람은 다름아닌 시인이다. 게다가 그는 아마추어 과학도보다는 “상상의 세계를 여행하며, 내 감각에 의지하고, 말을 다루는” 자로서의 자의식이 강하다.

부적절한 어휘와 비유를 무리하게 사용하는 우를 범하면서까지 저자는 간결하면서도 문학적인 감칠 맛을 버무린 문장을 쓰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이로써 책은 유사 대중서와 작별을 고하며 독자의 감성에 바짝 다가선다. 그는 이따금 다의어를 활용한 유머 감각도 구사하지만 주석을 보며 이해해야 하는 비영어권 독자에겐 왠지 ‘썰렁하다’는 느낌이다.

뭐니뭐니해도 저자의 신작이 지닌 최대 미덕은 단연 경계 없는 글쓰기이다. 문학의 정수인 시를 쓰는 자가 현대과학의 첨단을 논하는, 시쳇말로 ‘학제간 통합’이라는 어울림의 울림이야말로 7부 34장에 펼쳐진 진경이 아닐까. 어쩌면 독자는 근대 학문이 고집스레 쌓아올린 구분짓기와 배타의 벽에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는 의미심장한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