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 / 한국고문서학회 지음 / 역사비평사 발행 / 1만 2,000원

역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를 장악한 엘리트 계층을 주체로 삼아 과거를 서술하는 작업이라는 관념이 여전하다.

미시사(집단 속 개인에 초점을 맞춰 아주 작은 사실까지 파헤치는 역사)와 생활사는 이런 거대 담론식 역사관에 탈(脫)중심·해체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던 사조를 가미하는 시도를 통해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새로운 연구 조류를 타고 ‘평범한 사람’ ‘일상적 생활’이 역사의 중심 무대로 등장했고 아울러 기존 역사에 달라붙은 권위의 더께가 씻기고 있다.

한국사도 예외가 아니다. 젊은 역사학도들의 참신한 기획과 꼼꼼한 연구로 미시사 분야에 많은 성과가 축적돼 가는 중이다. 몇몇 뜻있는 학술단체는 연구 성과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가 모여 고문서를 연구하는 한국고문서학회도 그 중의 하나. 신간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은 한국고문서학회가 기획한 ‘조선시대 생활사’ 시리즈의 세 번째 노작이다.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면서 조선 시대 생활상을 총괄적으로 보여줬던 두 전작과 달리 이 책은 미시적으로 ‘의식주’에 돋보기를 갖다댄다. 인간의 원초적 생존 요건을 다루는 만큼 생활사 연구의 뼈대가 되는 작업인 셈이다.

목록은 단출하다. 의·식·주 3부에 필자 9명이 쓴 논문이 서넛 편씩 포함돼 있다. 논문 간에 내용이 겹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를 적절히 안배한 기획이 돋보인다. 사료를 활용한 그림과 고문서도 빼곡히 실려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총 10편의 글을 씨줄 날줄 삼아 짜나가는 조선 시대의 풍경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조정은 ‘복식에서 신분이 드러나야 한다’ ‘사치스러우면 안된다’며 옷차림새에 시시콜콜 간섭하지만 백성은 욕망을 따라 끊임없이 일탈한다.

반가(班家)의 부녀자들은 집 여러 채 값을 물고서라도 얹은머리를 화려하게 꾸미는 데 골몰하고, 반상(班常·양반과 평민) 가릴 것 없이 젊은 여자들은 ‘패션 리더’ 기생이 주도하는 유행에 맞춰 옷을 입었다.

2부에서는 음식 문화를 실었다. 18세기 전반까지는 조반과 석반, 하루 두 끼가 기본이었다. 당시에도 ‘점심’이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중식의 의미가 아니라 간식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양반은 자주 점심을 먹었지만 농민은 농번기에나 세 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조상들이 현대인보다 적게 먹었다고 생각하면 오산. 그들은 우리가 하루 종일 먹는 세 끼 양의 밥을 한 끼 식사로 해치웠다. 조선의 대식 풍습은 개화기에 입국한 외국인들에게도 놀라운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주택 문화를 다룬 3부에서는 조선 초기에 이미 온돌 난방 기술로 온실을 만들어 화초를 재배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세종 때는 온대 작물인 귤나무를 강화도로 가져와 온실에서 기르는 실험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도 부동산 문제가 있었는지 오늘날의 신도시에 비길 만한 수원읍 가옥을 대상으로 집값, 신분별 소유현황 등을 조사했다고 한다.

연구 결과 중인의 재산규모가 오히려 양반을 능가할 정도였으며, 같은 조건이라도 유력가의 집값이 더 비싸 인맥을 비롯한 비경제적 요인들이 주택 가격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지배층이 기록 문화를 독차지했던 조선이므로 오늘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사료는 주로 양반과 관련돼 있다. 하여, 생활사 저술은 정도의 차이가 날지언정 일정 부분 계급 편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문헌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량의 풍속화를 분석하거나 호구 자료를 낱낱이 살펴 통계를 내는 노고를 아끼지 않은 필자들의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덕분에 이 책은 반상 신분의 장벽을 솜씨 좋게 넘나들며 전작보다 훨씬 정교한 조선시대 생활사를 그려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