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FBI의 심리 분석관으로 일했던 로버트 레슬러는 범행 현장에 남겨진 증거들을 이용해 범인의 신상을 파악하는 이른바 범인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해 당시 연쇄 살인범 검거에 한몫한 바 있다.

현대에 이러한 프로파일링 기법이 도입된 가장 큰 이유는 원한관계에 의한 범죄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대에 들어서 뚜렷한 범죄 동기나 목적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인 범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범인 프로파일링을 통해 밝혀진 연쇄살인범들의 신상이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FBI가 한때 36명의 연쇄살인범의 공통 특징을 밝힌 바에 따르면 악랄한 살인자 대부분이 '20-30대 백인 남성으로 꽤 매력적이며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진 자'였다고 한다.

이들은 현실세계에서는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듯하지만 보통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과대망상에 빠져있고 비윤리적, 비도덕적 행위에 일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엽기적인 살인을 거침없이 행한다.

이러한 반사회적 성향을 지난 자를 범죄 심리학자들은 '사이코 패스'라 부르고 일본의 범죄 심리 전문가 니시무라 유키는 '정장차림의 뱀'이라 묘사하기도 했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뱀'이자 엽기적인 '사이코 패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영화는 80년대 미국의 여피문화를 풍자, 조롱한 '아메리칸 사이코'다.

여피(Yuppi: Young, urban, professional)는 경제활황을 누리던 미국의 80년대 베이비붐 세대를 일컫는 말로 겉치레를 중시하고 소비지향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화려한 여피가 어떻게 희대의 살인마로 둔갑을 하는 것일까?

영화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주인공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었다는 식의 범죄동기를 추적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가 단지 살인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이코 패스'일 뿐이고 그의 살인 충동은 부의 결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의 과잉으로 인한 탐욕에서 오는 것이라며, 경제 활황으로 인해 속칭 '지름신이 강령한' 80년대 미국사회의 병폐를 문제 삼는다.

영화의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은 뉴욕의 잘 나가는 증권사의 새파랗게 젊은 CEO다. 약혼녀는 상류계급 출신이고 어울리는 동료들도 하나같이 아르마니나 발렌티노로 빼입은 명품족들이다.

아도니스 콤플렉스(외모 집착증)가 있는 베이트만 역시 스킨 케어와 헬스, 몸치장에만 전력을 다할 뿐 일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동료들과는 유명 레스토랑을 예약할 수 있는 지, 명함의 종이 질과 인쇄상태가 최상급인지를 통해 서로의 지위와 권력을 견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한다.

하지만 자존심 대결에서 매번 패하는 베이트만은 열등감으로 인해 질투의 화신이 된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질 좋은 명함을 갖고 유명 레스토랑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동료 폴 앨런이다.

폴 앨런을 집으로 불러들여 도끼질을 해대는 베이트만. 피의 살육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주체할 수 없는 과시욕과 허영기로 베이트만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결국 약자를 향해 마초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거리의 부랑자, 매춘여성, 모델, 그리고 옛 여인이 그의 표적이다.

주인공의 연쇄살인으로 인해 영화가 잔혹한 슬래셔 무비일 것 같지만 실상 영화는 내내 코미디적인 요소를 잃지 않는다. 외적인 것에 집착하고 탐욕과 쾌락에 젖어드는 젊은 엘리트 그룹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며 그들을 희화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영화는 자기 중심적이고 타인과 피상적인 교감밖에 할 수 없는 얄팍한 이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던질 뿐이다.

80년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소비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아메리칸 사이코’는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일본에서 초등학생을 15층에서 던져 살해한 범인도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평소에는 정상적인 가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범인이 40대 실직자라는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부의 과잉으로 인해 광기에 사로잡힌 영화 속 주인공과 부의 결핍에 시달렸을 실직자 범인 모두 어쩌면 욕망을 미화시키고 허영을 장려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는 냉담한 자본주의의 희생양은 아닌지, 풍요의 시대 한 켠에 드리워진 그늘을 생각해 보게 된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