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의 금서 / 니컬러스 J. 캐롤리드스, 마거릿 볼드, 돈 B. 소바 지음 / 손희승 옮김 / 예담 발행 / 2만2,000원

<100권의 금서>라는 제목에서 ‘은밀한’ 호기심을 품었다면 책을 펴는 순간 맥이 풀릴 지도 모르겠다.

군주론, 동물농장, 종의 기원,율리시스, 주홍글씨…. 100권 중 상당수는 각종 추천도서 목록에서 쉽게 발견될 만한, 읽어보지 않았어도 어쩐지 친숙한 느낌을 주는 양서이기 때문이다.

3명의 공저자들은 각각의 작품 내용을 실팍하게 요약해 놓고 있어 700쪽짜리 번역서는 독자들에게 근·현대 걸작을 두루 시식해보는 가외의 포만감까지 선사한다. 물론 저자들이 전하고자 하는 맛은 ‘금지된 책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서적 검열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15세기 말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기를 발명하면서 책은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매체로 발돋움한다. 그에 맞춰 자신의 입장과 어긋난 내용을 담은 서적을 적발, 압수하거나 출판을 금지하려는 움직임도 분주해진다.

근대 이후 역사는 책을 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 사이의 크고 작은 전투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영문과 교수와 ‘월드 프레스 리뷰’ 잡지 편집장으로 구성된 필자들은 전투의 연유를 정치, 종교, 성(性), 사회(인종·계층·탈사회적 행위) 4부로 나눠 각각 25권씩 소개하고 있다.

이런 구분은 그다지 명쾌하지 않은데 금서를 둘러싼 갈등이 보통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까닭이다.

필자들은 맡은 부문마다 검열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개괄하는 네댓 쪽의 머리말을 썼다. 금서의 내용이 대략 무엇이고, 어떤 수난을 당했는지를 100차례에 걸쳐 인내심 있게 반복한다. 따라서 그들이 의사표현 및 출판의 자유를 거슬렀던 ‘금서의 문화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해설하기란 한계가 있다.

또한 소개된 금서 대부분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초판이 발간됐고, 그렇지 않은 경우조차 논쟁과 갈등의 전투장소는 태반이 미국이다. 간간이 유럽 일부 국가와 뉴질랜드, 러시아(혹은 소련)의 사례가 끼어들 뿐이다.

한정된 국가에서 일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일을 다루다 보니 여러 권이 함께 수난을 당한 사건 서술은 문장조차 바뀌지 않은 채 몇 번이고 되풀이된다. 독자에 따라선 상당한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런 불평은 다분히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필자들이 미국인이기에 영미에 뿌리를 둔 소재를 고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독자가 친절하고 정갈한 결론을 기대했다는 이유로 건조한 정보 나열이라는 전략을 택한 글쓴이를 무턱대고 비난할 것은 못된다. 게다가 이 책은 미국의 유명 백과사전 <팩츠 온 파일(Facts on File)> 중 ‘금지된 책’ 시리즈에서 선별한 내용으로 꾸며졌기에 필자들의 존재감은 애초부터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여 독자 스스로가 금서 낱낱의 사연을 종합해 검열의 역사를 나름대로 이해하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할 듯싶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되는 의미심장한 사실은 서적 검열이란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 여러 이해 집단이 자신들에게 못마땅한 내용을 자의적으로 발췌해서 비난을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1852년 미국에서 나온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한 예이다. 백인들은 이 소설이 노예제를 흔들고 가당찮은 평등사상까지 전파한다고 공격한다. 흑인들은 주인공 톰을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묘사한 데다 인종 차별적인 구절과 어휘를 썼다며 비난한다.

가톨릭 국가에선 교회와 성직자를 비판하는 부분이 많다는 이유로, 러시아에서는 전제군주제가 비인간적이라는 언급이 나온다며 스토 여사의 소설에 판금 조치를 내린다.

이처럼 어떤 비판자도 책 전반의 주제를 고려하지 않는다. 작품의 본질보다 수용자의 자의적 판단이 앞서는 전복적 상황은 지금,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지 않을까.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