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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타운] 악어와 악어새, 서로를 물고 뜯다
사생결단, 마약 판매상과 강력계 악덕 형사의 의리없는 동행



한국영화계에는 ‘남자영화’라는 정체불명의 장르가 존재한다. 남자들의 대결 혹은 유대를 남성적 시선으로 묘사한 선이 굵은 드라마들이 이 계보에 속한다.

멀리 ‘용팔이’ 류의 액션영화까지 거슬러갈 수 있겠으나, 비근한 예로 <친구>가 있다. <친구>의 고색창연한 남성성 찬양에 뒤이어, <킬리만자로의 표범> <말죽거리 잔혹사> <야수> 등이 질퍽한 수컷들의 세계에 상찬을 바쳤다.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 황정민류승범이 동반 출연한 <사생결단>은 한국형 남자영화의 최신판이다. 한국 사회의 추악함과 그 속에서 아귀다툼하는 군상들의 몸부림을 의리나 대결, 배신 등의 남성적 가치를 통해 다루는 이 장르는 다양한 버전으로 당대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밑바닥 인생들의 약육강식 세계

장사꾼 기질을 타고난 마약 중간 판매상 이상도(류승범)는 부패 경찰 도경장(황정민)의 정보원으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도경장의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함정수사에 협조했다가, 도경장은 정직, 상도는 유치장 신세가 된다. 출소 뒤 상도는 다시 한 번 도경장의 회유에 넘어가 신진 마약 조직 대부 장철(이도경)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작전에 협조한다.

장철 조직의 뒤를 캐던 중 상도와 도경장은 악명 높은 마약 중독자였던 상도의 삼촌(김희라)이 그들의 수사와 관련이 있음을 눈치채고 혼란에 빠진다.

사뭇 비장미마저 풍기는 이 영화의 제목은 흡사 80년대 말 유행했던 홍콩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오프닝 장면과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무엇보다 <사생결단>이라는 제목과 ‘마약’이라는 강력한 소재는 영화를 만든 최호 감독의 이력과 묘하게 공명한다.

<후아유>로 인터넷 시대의 로맨스를 소곤소곤 들려주던 그가 4년 만에 거칠고 투박한 밑바닥 인생들의 삶으로 옮아간 이유는 뭘까? 일견 의아해보이는 이러한 변화는 최 감독의 데뷔작 <바이 준>이 환각에 빠진 청춘들의 부박한 삶에 초점을 맞췄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리 놀랄 일만도 아니다.

<바이 준>의 뿌리 없는 젊은이들이나, 직접 접촉이 아닌 가상 공간에서의 접속으로 감정을 키우는 <후야유>의 방황하는 청춘들이나, 사정이 딱하기는 매한가지다. 한 움큼도 안 되는 백색 환각 가루에 온 인생을 저당 잡힌 가련한 ‘뽕쟁이’들은 어떤가? <사생결단>은 생존의지에 중독되어 정체성이 말살돼 가는 또 다른 방황하는 인물들을 그린다.





영화의 배경이 의미심장해지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사생결단>은 IMF라는 건국 이후 최대 환란을 배경으로 밑바닥 인생들의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침투해 들어간다.

무대는 IMF 직후의 부산. 거품경제의 희생양이 된 이들의 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것 중엔 마약도 있다. 마약은 팍팍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시적 피안을 제공하는 도구이다. 그걸 파는 상도는 ‘벤처사업가’요, 뽕쟁이들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도경장은 ‘미친 놈’이다.

이성적인 비즈니스맨 상도와 말 보다 주먹이 앞서는 다혈질 짭새 도경장의 관계는 ‘대결’이면서 ‘협력’이다. 도경장은 장철의 비밀을 캐고자 상도의 뒤를 봐준다.

지긋지긋한 짭새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역시 생존을 위해 그의 제안을 물리치지 못하는 것이 ‘악어새’ 상도의 운명이다. 경찰 인생의 숙원인 장철을 잡기 위해 활개치는 범법자를 용인하고 그가 작성한 각서에 도장까지 찍어야 하는 도경장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생하고 역동적인 묘사의 힘

<사생결단>의 모든 영화적 요소를 축약하자면, 한마디로 ‘징함’이다.

악어와 악어새로 비유되는 마약상과 강력계 경찰의 공생관계를 끝까지 파헤치는 드라마도, 상대를 짓밟고 어떻게든 살아 남기 위해 배신과 협잡 그리고 이전투구를 마다하지 않는 비린내 나는 수컷들의 본성도, 음험한 뒷골목의 거래와 배신을 변화무쌍한 스타일로 쫓아가는 감독의 시선도, 죄다 징글징글하다.

“한국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표현의 수위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당초의 소문이 허언이 아닐 정도로, 마약과 환각의 삶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충격적이다. 관련 용어와 중독자들의 행태,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무언의 질서는 흥미진진한 드라마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마약을 둘러싼 군상들의 삶을 채록한 듯한 생생한 묘사는 철저한 사전조사와 발로 뛴 취재의 결과다. 최 감독은 2003년부터 마약 수사과 경찰들을 취재해 마약 중독자들과 그들을 검거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낭만과 이국색이 어우러진 제2의 도시 부산을 어둡고 음습한 검은 도시로 그리기 위해 새로운 장소들이 필요했다. <사생결단>에서는 연산동 환락가와 부산대교, 실제 사람이 죽어나갔다는 부산 모처의 폐공장, 달동네 등 그간 부산 배경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간이 선을 보인다.

명멸하는 불빛과 흥청거리는 인간들이 교차하는 이 달뜬 도시는 겉은 번듯해 보이지만 추악한 욕망으로 속이 썩어가고 있는 당대 한국사회의 타락상을 흡사 ‘소돔과 고모라’의 형상으로 재현한다.

여기에 황정민과 류승범의 명불허전의 연기는 소재와 주제의 무거움을 강력한 에네르기로 상쇄시키고 있다. 촬영 기간 내내 24시간 함께 지냈다는 두 배우의 궁합은 눈으로 확인해야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불운한 개인사를 딛고 재기에 성공한 중견 배우 김희라의 구력과 마약왕 장철로 출연한 이도경의 압도적 존재감, 그리고 <사생결단>의 발견이라 할 추자현의 ‘몸을 던진’(이 상투적인 찬사가 이처럼 어울리는 경우도 드물다) 헌신은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룬다.

주인공들을 보조하되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는 조연들의 영화를 고르라면, 난 이 영화를 천거할 것이다.



입력시간 : 2006/05/02 14:35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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