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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리산 '氣' 충만한 변강쇠 마을
함양 마천, 옹녀와의 정기 듬뿍… 가는 길엔 깨달음의 고개도



함양에서 지리산 기슭의 마천으로 가려면 1023번 지방도가 지나는 오도치(悟道峙)를 넘어야 한다. 옛 사람들이 지리산의 품에 안길 때 넘던 관문이다. 당시엔 고갯마루에 미륵불을 모신 당집이 있어 고개를 오가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렸다고 하는데 현재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고갯마루를 넘다보면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의 주릉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도를 깨닫는 고개’라는 뜻의 오도치라는 이름도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인오조사(印悟祖師)가 이 고갯길을 넘다가 도를 깨달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오도치 고갯길에서 만난 변강쇠와 옹녀

오도치 고갯길인 휴천면 월평리 산기슭엔 ‘변강쇠가’의 주인공인 변강쇠와 옹녀의 가묘가 있다. 알다시피 정력이 좋다는 변강쇠와 음탕한 옹녀는 우리나라 성애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남녀. 이들의 묘가 여기에 있게 된 사연은 이렇다.

평안도 월경촌 출신 옹녀와 삼남 사람 변강쇠는 개성 청석관에서 우연히 만나 운우의 정을 나눈다. 속궁합이 제법 맞았던 이들은 같이 살기로 하고 삼남을 떠돌다가 지리산 기슭으로 흘러들어 오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지리산은 광대하고 넉넉한 품으로 많은 사람들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있다. 떠돌이 생활에 갈 곳 없던 변강쇠 부부도 지리산이 받아준 유랑민들이었다.

이들은 임진왜란 때 부자가 피난했던 첩첩산중의 빈집에 들어가 살았다. 현재 이들이 살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나 ‘변강쇠가’에는 함양의 마천 인근이라고 전해진다. 이에 함양의 뜻 있는 주민들은 임진왜란 때 부자가 피난해 살았다는 구전의 골짜기를 찾아 전설을 추적했고, 결국 이곳에 변강쇠와 옹녀의 쌍묘를 쓰게 된 것이다.

이들이 살던 마을에서 멀지 않은 ‘등구 마천’은 내지리(內智異)의 관문인 마천의 등구동이다. 그렇게 하면 변강쇠가 나무하러 가서 낮잠 잔 곳은 백무동이요, 장승을 뽑아간 곳도 벽송사 근처라는 가정도 잘 맞아떨어진다.

오도치를 넘은 뒤 엄천강(임천강)을 건너 칠선계곡 초입의 추성동으로 올라가면, 벽송사(碧松寺)가 반긴다. 서산대사 이전에 조선의 선맥을 빛낸 8명의 조사가 수도 정진했다는 유서 깊은 이 천년고찰은 아쉽게도 한국전쟁 때 삼층석탑만 남기고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

변강쇠가의 모티브가 되었을 법한 절 입구의 목장승도 이때 깊은 상처를 입은 채 겨우 살아남았다. 오른쪽의 호법대신(護法大神)은 비교적 상처를 덜 입었고 왼쪽의 금호장군(禁護將軍)은 머리의 대부분과 얼굴 일부가 불에 타버렸다.



▲ 변강쇠가의 모티브를 제공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벽송사의 목장승.


벽송사 근처에 있는 서암정사는 동굴 속 마애불들이 도량을 지키고 있는 21세기의 불국정토다.

암자 입구는 두 길이 넘는 두 개의 돌기둥에 ‘百千江河萬溪流’ ‘同歸大海一味水’(수많은 시냇물이 모여 강과 하천이 되고 함께 큰 바다에 흘러들면 한 맛이 된다)라 새겨져있다. 이어 좁은 바위 틈 사이를 지나면 돌로 다듬은 사천왕상이 나타나는데, 죄지은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사실적이다.

여염집 같은 암자를 지나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동굴로 이루어진 극락전이 보인다. 20여 평 남짓한 동굴의 자연석엔 부처, 보살, 나한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솜씨는 마치 밀가루로 반죽한 것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동굴 중앙에는 아미타불 좌상이, 왼편으로는 지장보살의 좌상이 자리 잡았다. 지장보살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지팡이도 아주 섬세하고, 왼손의 구슬은 유난히 검은색 광채를 띄고 있다. 마천 지역의 돌은 옥 성분이 있어 조각한 후 깨끗이 갈아주면 옥이 되는데, 이 구슬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지리산 기슭에 기댄 벽송사와 서암정사

극락전을 나와 오른쪽 돌계단을 오르면 산신전과 비로전이 반긴다. 비로전으로 들어서면 세 개의 커다란 자연석이 있고 그 위에 큰 바위가 절묘하게 올려져 있다.

제일 위엔 비로자나불이 있고, 아래 세 개의 바위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그리고 선재동자가 조각되어 있다. 왼쪽 커다란 바위엔 호랑이 등에 올라 탄 산신과 오백나한 중 하나인 독성이 꽃사슴을 거느리고 있다. 모두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서암을 21세기의 석굴사원으로 일으킨 분은 원응(元應) 스님이다.

스님은 1960년대 초에 벽계사 주지로 온 뒤 절집 주변에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시체를 발견하곤 그 원혼들을 위로하고, 남북한의 화합과 통일을 바라며 원력 불사를 일으켰다 한다. 원응 스님은 1985년부터 화엄경 금니(金泥) 사경(寫經)을 시작해 무려 12년 만에 완성하기도 했다.

그 뜻을 듣고 동굴의 자연석에 아미타불 세계를 구현한 사람은 바로 홍덕희라는 석공. 1982년 전국기능경진대회 석공예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33세가 되던 해인 1991년부터 이 일을 처음 시작했다.

그는 이후 무려 11년 동안 밤낮으로 매진했는데, 옛 석공들처럼 부인이나 자녀가 작업장을 찾아오지 못하게 하고, 술과 담배도 금하는 등 수도승 같은 자세로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깊은 불심과 지리산의 맑은 정기가 아니었으면 이루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별미
마천의 흑돼지는 비계가 적고 껍질도 쫄깃쫄깃해 맛이 좋다. 마천면의 농가는 한두 마리씩의 흑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딩기’라고 불리는 쌀겨나 음식 찌꺼기도 같이 먹인다. 월산식육식당(055-962-5025)은 흑돼지 전문식당. 1인분 7,000원.

숙식
칠선계곡 초입인 추성동엔 칠선산장(055-962-5630), 벽송산장(055-964-1321), 추성산장(055-962-2422), 예그리나 펜션(055-962-2258) 등 10여 개의 숙박시설이 있다. 백무동 지구에도 영진산장(055-964-1877), 느티나무식당(055-962-5345) 등 숙박시설이 많다. 지리산 자연휴양림(055-963-8133)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교통
△ 경부고속도로→ 비룡분기점→ 대전-통영 고속도로→ 함양 분기점→ 88올림픽고속도로→ 함양 나들목→ 함양 읍내→ 24번 국도(남원 방면)→ 5km→ 1023번 지방도→ 오도치→ 마천
△ 동서울(구의동)→ 함양→ 백무동. 하루 6 회(08:20~19:00) 운행. 3시간40분 소요. 요금 19,300원.
△ 이외에도 서울 남부(9회), 인천(7회), 부산 서부(수시), 대구 서부(17회), 전주(30여 회), 광주(4회), 대전 동부(7회) 터미널에서 함양까지 매일 운행.
△ 함양→마천=버스터미널에서 17회(07:00~18:30) 운행. 추성동 50분 소요. 함양시외버스터미널 055-963-3281



입력시간 : 2006/05/09 11:43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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