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차밭 녹차 만들기

5월의 자연은 싱그럽다 못해 눈부시다. 대지의 나무들은 꽃보다 아름다운 초록 잎사귀를 가득 달고 5월의 햇살을 품에 안는다. 여린 초록빛 잎사귀들이 삐죽삐죽 돋는 지금, 차밭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향기로운 5월의 차밭을 거닐어본 적이 있는가. 나무의 푸른 기운이 몸에 스며들어 머리와 가슴까지 맑아질 것이다. 손수 녹차를 만들어보는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다. 땅끝 해남에선 찻잎을 따서 직접 덖는 체험을 맛볼 수 있다.

땅끝 해남의 유기농 차밭

초록이 지천으로 활개를 치는 5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남도 여행 계획으로 설렌다.

신록의5월에는 어디를 가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남도의 차밭은 1년 중에 지금이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에 찾아간 곳은 차밭 산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다(製茶) 체험이 가능해 더욱 색다르다.

땅끝으로 유명한 전라남도 해남. 바다가 멀지 않은 두륜산 자락에 설아다원이 자리해 있다. 오근선, 마승미 부부가 차밭을 일구기 시작한 것은 9년 전. 잡목과 들풀이 뒤엉킨 산자락을 개간해내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차나무 묘목을 구해 심었으나 대부분 고사했다고. 일지암, 보성, 화개 등지에서 씨앗을 구해와 심은 것이 지금의 차밭이다.

처음에는 차나무보다 자운영 같은 풀들이 더 컸으나 이제는 나무가 꽤 자라서 무릎 높이는 거뜬히 넘는다. 보성이나 제주의 대규모 차밭에 비하면 턱도 없이 작다. 하지만 비료, 제초제, 농기계 같은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면 제법 큰 편이다.

차밭에는 차나무와 풀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보성이나 제주처럼 깔끔하고 예쁜 차밭은 아니지만 자연친화적인 차밭이다. 때문에 줄을 맞춰 놓았을 뿐 야생차와 한가지다. 몇 해 전에는 유기인증도 받았다.

1창2기 여린 찻잎 따기

차 만들기의 시작은 찻잎 따기부터 시작한다.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 뒤에 자리한 차밭으로 향한다. 이슬이 내렸는지 금세 옷자락이 이슬에 젖어든다. 비가 오려는지 흐린 하늘. 차밭 끄트머리가 가물거릴 정도로 옅은 안개에 덮였다.

찻잎 따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차밭에는 이미 동네 아낙 세 명이 나와 부지런히 손을 놀리고 있다.

“1창2기만 따야지라. 창은 뾰족한 새순이고, 기는 잎이요. 이파리가 좀 크다 싶으면 1창1기만 따고, 보드랍다 싶으면 1창2기를 따면 되지라.”

한 아낙이 설명해 주는데도 잘 모르겠다. 바구니에 든 찻잎을 보여주니 비로소 알 것 같다. 손가락 한마디 정도 길이에 잎이 한두 개 붙은 녀석을 고르라는 말이다. 벌레 먹은 것이나 찢어진 것 등 흠이 있는 것도 안 된다. 쓴 맛을 내기 때문.

그야말로 예쁜 새순만 골라 따야 한다. 손톱으로 끊으면 나중에 그 부위가 까맣게 표시가 나기 때문에 톡 뜯어야 한다고. “톡, 톡, 톡” 새소리 외엔 너무나 고요한 아침, 차밭에 찻잎 뜯는 소리가 경쾌하다.

찻잎 따기가 얼추 다 되었으면 제다 체험장에 딴 잎들을 펼쳐 놓는다. 한동안 시들도록 내버려두었다가 덖기를 시작할 참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주인장이 생잎차를 한 번 맛보라며 찻상 앞에 앉으란다.

가공을 전혀 하지 않은 생잎을 우려먹는 것은 차밭에서나 맛볼 수 있는 특별함이다. 금방 따온 찻잎을 한 움큼 집어 코 가까이에 대면 풋풋한 잎 냄새가 향긋하다. 생잎차는 그 풋풋함을 우려먹는 것. 자연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온몸에 전해진다.

세 번 덖어 만드는 차

드디어 차 만드는 시간. 두건을 쓰고 장갑을 끼면 준비 완료. 먼저 차를 덖기 전에 찻잎 고르기를 한다. 너무 붉은 것, 상한 것, 너무 큰 것들은 골라낸다. 찻잎의 무게도 잰다. 그런 다음 솥을 적당한 온도로 맞춘다.

찻잎을 넣고 살살 덖는다. 덖기는 찻잎을 뜨거운 무쇠솥에서 익히는 과정이다. 덖어야 구수한 맛이 생긴다. 찻잎이 익기 시작하면 색이 더욱 파래지고, 차츰 익는 냄새가 난다. 풋풋함이 사라지는 대신 점점 구수한 냄새가 난다. 처음 덖는 과정에서 차 맛의 70%가 완성되므로 제일 중요하다.

덖은 다음은 비비기. 잎사귀를 비벼서 마는 것으로 이때 너무 힘을 줘서도 안 되고, 약하게 해서도 안 된다. 적당히 비벼야 나중에 차 맛이 잘 우러난다고.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그 중간의 힘을 찾기 위해 손바닥에 온 신경을 집중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래도 손끝에서 돌돌 말리는 찻잎이 나중에 차 주전자 속에서 물을 머금어 다시 활짝 필 것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다.

비빈 찻잎들이 서로 뭉치지 않도록 털고 난 다음 건조를 한다. 수분이 어느 정도 마른 다음 두 번째 덖기를 시작한다.

처음보다 약한 불로, 손길도 더 부드럽게 한다. 비비기와 말리기도 마찬가지. 처음보다 조심스럽다. 수분이 없어지면서 이파리가 부서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 번 덖고, 세 번 건조하면 차가 완성된다.

마지막 건조까지 마친 다음 봉투에 담는 것으로 드디어 완성. 주인장이 만든 차와 비교해 보니 모양도 엉성하고, 향기도 훨씬 연하지만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뿌듯하다.

찻잎을 따고, 덖고, 비비고, 털고, 말리기를 되풀이하는 우리 차 만들기의 전 과정을 직접 거치고 나니 차 한 잔이 훨씬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런 정성 덕분에 차의 향기가 이렇듯 깊고, 빛깔이 이처럼 고우며, 맛이 이토록 그윽한가 보다.

체험여행

*설아다원 : 5월부터 6월까지 제다 체험을 한다. 손수 만든 녹차는 집에 가져갈 수 있다. 체험 시간은 4~5시간 정도. 비용은 일반 3만원, 가족(3~4인) 5만원, 학생 1만원. 제다 외에 다도, 사물놀이, 절기놀이, 황토염색 및 지장수 만들기, 민속놀이 등 다양한 체험 가능.

다원 안에 마련된 전통 한옥에서 민박을 할 수 있다. 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15평 규모의 전통 한옥방과 풍물 체험방은 12만(평일)~15만원(성수기), 황토구들방(5평, 3~4명 수용)은 4만~7만원, 생태적인 생활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호롱불담틀집(5평, 3~4인 수용)은 5만~8만원. 061-533-3083

*찾아가기 :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간다. 2번 국도를 이용해 강진 방면으로 달리다가 성전 갈림길에서 13번 국도로 갈아타면 해남읍에 이른다. 대흥사 방면으로 806번 지방도를 따라 남하하다가 삼산농협 사거리에서 북일 방면으로 좌회전해서 827번 국도로 갈아탄다. 오소재 고개를 넘어가면 삼성리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삼성리 마을에 설아다원이 있다.




글·사진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