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

“예술은 사기(詐欺)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으로 기존 예술의 권위와 가치를 공격했던 고 백남준의 예술관은 ‘전복과 혁신’ 그 자체다.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라 불린 그는 대중문화의 우상이자 거대 자본주의의 표본인 텔레비전을 공격함으로써 디지털 아트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창조를 위해 제도권 예술을 공격하고 기존 예술 관념을 파괴한 그에게 고상한 척하는 취향은 역겨운 것이었을 테다. 그런데 “고상한 취향은 불쾌한 것이며 창의력의 적”이라고 한 사람이 또 있다. 다름 아닌 입체파의 창시자 피카소다.

빌 플림톤의 애니메이션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취향에 대한 피카소의 아포리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백남준이 그러했듯 대중문화의 우상을 공격한다. 그의 만화적 상상력이 바로 고상한 척하는 관념에 대한 전복이고 사기 치는 예술에 대한 반역이라고 대대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피카소까지 운운하며 포문을 연, 제목부터 독특한 이 애니메이션은 시작부터 기묘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열렬히 사랑을 나누는 한 쌍의 새. 이들은 지나치게 몰입한 탓에 그만 위성 수신 안테나에 충돌하게 되고 그로 인해 레이저 광선이 주인공 남자 그랜트의 목에 쏘여진다.

그랜트는 갑자기 목에 생겨난 종기 덕에 상상력을 현실로 옮기는 초능력을 갖는다. 섹스 도중 아내를 원하는 상대로 바꾸기도 하고 정원의 잔디를 괴물로 돌변시키기도 한다. 더러는 얼굴을 온통 벌레로 뒤덮는 보기 불편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 남편이 외계인이 아닌가 의심스럽고 두려울 뿐이다. 그러던 중 그랜트는 자신의 능력을 TV 쇼에서 발휘하고 사악한 미디어 재벌이 그의 능력을 유심히 관찰한 끝에 그의 목에 난 종기를 발견한다.

종기가 초능력의 원천임을 알게 된 그는 종기를 손에 넣어 전 세계 시청자들을 좌지우지할 계획을 꿈꾼다. 여기에 삼류 코미디언까지 가세해 그를 이용하려 하지만 그랜트는 매 순간 기발한 둔갑술을 발휘하며 위기를 탈출한다.

그의 둔갑술이란 게 이렇다. 미사일이 햄버거가 되기도 하고 탱크들이 순간 서로 교미에 몰두하고 군인들이 도마뱀으로 변하는 식이다. 이러한 유치한 상상력과 더불어 영화 사이사이에는 성적인 농담이 가득하다. 섹스 장면에는 주변 사물들 모두가 함께 피스톤 운동에 열중하고 여자는 유혹하고 남자는 흥분하는 과정들도 코믹하다.

하지만 성인 애니메이션답게 폭력성과 선정성의 수위가 위태위태하다. 그 탓에 독점적인 매스 미디어의 횡포와 거기에 기생하는 속물을 공격하는 정치적 의미가 가득한 만화는 때때로 관객에게 불쾌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과연 이 모든 상상력이 기발함인지 미친 짓인지는 관객 취향의 몫이다. 그런데 영화 시작에 놓치지 말아야 할 아포리즘이 하나 더 있다. 피카소의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헤르만 괴링의 말. “교양 운운하면 쏴버리고 싶다.” 나치정권의 2인자 헤르만 괴링 역시 고상한 취향을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히틀러를 광적으로 추종했던 그의 광기가 과연 창조를 위한 것이었을까? 영화가 시작부터 피카소와 헤르만 괴링의 말을 함께 꺼낸 것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파괴와 전복, 과연 창조와 혁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파괴만을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의 상상력은 정말 기발한 것인가 아니면 미친 짓인가.

선거철만 되면 혁신과 창조의 이름으로 상대를 뒤집어 엎고 무너뜨리기가 횡행한다. 과연 건설과 창조를 위한 공격인지, 파괴 그 자체만을 위한 공격인지, 영화를 보고 난 필자에게 생뚱맞게 떠오른 생각이다. 정치인들의 기발한 상상력은 대체적으로 미친 짓들이 많았으니까.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