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딸기

한 장 한 장 떨어지는 꽃잎이 그리 아까울 수가 없다. 봄비가 소곤소곤 내리는 이유는 이런 내 마음과 같은 생각 때문일까.

그런데 장맛비 같은 봄비가 후두둑 한참 내리더니 봄의 빛깔이 변했버렸다. 좀 더 진한 연둣빛으로. 이제 불쑥 찾아온 더위로 숲에선 잎새들이 쑥쑥 소리를 내며 올라올 터이다.

사람들은 이즈음 산에 가면, 어떤 식물이 가장 궁금할까? 어디든 자라는 식물이어서 누구나 흔하게 만날 수 있고, 줄기를 늘어뜨려 자라며 제법 발에 채이니 쉽게 인식하게 되고, 게다가 꽃마저 곱게 피어나니 이내 이름이 궁금해지는 나무가 있다. 바로 줄딸기이다.

줄딸기는 장미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이다. 무엇을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은 아니지만 줄기가 축축 늘어져 그렇게 보일 뿐이다. 숲에서는 그리 건조하지 않은 기슭이나 골짜기에, 하지만 너무 그늘지지 않은 가장자리에서 주로 자란다.

사실, 줄딸기는 우리가 흔히 산에서 따먹는 산딸기와 유사한 열매를 달고 있으므로 열매가 눈에 띄면 잎이며 꽃이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뭉뚱그려 산딸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산딸기와는 같은 집안식물이면서도 서로 다른점이 많다. 우선 잎이 그러하다. 줄딸기는 손바닥만한 잎이 복엽이어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 작은 잎들 5-9장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산딸기는 한 장의 잎에 크게 결각이 나 있는 정도이다.

꽃도 다르다. 줄딸기의 경우 이즈음 타원형의 길쭉한 분홍빛 꽃잎을 5장씩 달고 있는 꽃들이 새로 나는 줄기 끝마다 가시가 달리는 꽃자루를 쭉 내밀어 줄줄이 하나씩 달리지만, 산딸기는 흰 꽃을 피운다. 다만 한여름에 먹을 수 있는 열매의 모습은 둘 다 거의 비슷하다.

사실 산딸기 집안에는 이 두 종류 이외에도 멍석달기, 복분자딸기, 곰딸기 등 아주 다양한 사촌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줄딸기가 반가운 것은 꽃도 가장 먼저 피고 열매도 가장 먼저 익는다는 점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덩굴딸기, 덤불딸기, 애기오엽딸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도 면에서는 관상용으로 좋을 듯싶다. 그늘지는 울타리에 축축 걸쳐 심으면 꽃도, 잎도 열매도 모두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밖에 식용이나 약용으로 그 쓰임새를 생각해보면 다른 산딸기류와 거의 비슷하다.

우리는 그저 산에서 우연히 마주친 열매를 따먹거나, 풍류객 집에서 담궈 놓은 과실주로 즐기거나, 혹은 부지런한 시골 아낙들이 열매를 따다가 시장에 내다 놓아 사먹을 수 있는 것이 고작이지만 서양에서는 다양하게 활용된다.

관상용으로 키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종류의 품종을 만들고 길러 비타민이 풍부하고 싱싱한 열매를 먹기도 하고 젬, 젤리, 과즙 제품으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줄딸기로 만든 파이는 그 맛이 일품이다.

한방에서는 산딸기나 복분자딸기나 크게 구별하지 않고 복분자 혹은 복분이라는 생약명으로 이용한다. 약재로는 덜 익은 열매를 쓰는데 초여름에 아직 푸른 기운이 남은 열매를 따서 그대로 햇볕에 말렸다가 물에 달이거나 가루로 만들어 처방한다.

여러 가지에 좋지만 무엇보다도 기운을 북돋워 ‘힘’을 넘치게 해준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술을 빚어 먹기도 하는데 피로회복이나 식욕증진에 좋다.

물오른 봄이 너무 익어버림은 아쉽지만, 이 봄이 가면 신록의 잎새 뒤에 숨어 빨갛게 익어가는 줄딸기를 만나는 재미도 기다리고 있겠지!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