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김삿갓 유적지

커다란 삿갓 뒤집어쓴 채 죽장 하나 들고 삼천리 방방곡곡 떠돌며 시와 술로 세상의 고뇌를 다 풀려 했던 방랑시인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1807-1863).

시인은 조부 익순(益淳)이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이 되었다가 겨우 사면 받아 영월 산골로 숨어든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스무 살 무렵, 과거에 나가 조부의 불충을 비난하는 글로 문장력을 과시했다가 깊은 상처를 받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떠도는 방랑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내 삿갓 빈 배와 같이
한번 쓰고 다닌 지 어느덧 사십 평생이라.
더벅머리 목동의 소몰이 갈 때의 차림새며
갈매기 벗하는 늙은 어부의 모습 그대로일세.
술 취하면 옷을 벗어 나무에 걸고 꽃구경하며
흥이 나면 손을 들어 누각에 올라 달구경하네.
사람들의 의관이야 겉모습 치장하기에 바쁘지만
내 삿갓은 비바람 가득 몰아쳐도 근심 걱정 없다네.
-김삿갓 시인의 '삿갓의 노래' 전문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 풍자와 재담으로 가득한 노래는 100년이 넘게 인구에 회자되었건만, 소문으로만 떠돌던 시인의 묘소는 20세기 말에 와서야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시인의 아들 익균이 전라도 화순 땅 동복에서 이장한 김삿갓의 묘소를 영월의 향토사학자 고 박영국 선생이 영월 마대산(1,052m) 기슭의 와석골에서 찾아낸 것이다. 1982년의 일이다.

당시 박영국 선생은 ‘김삿갓 무덤은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의 양백지간, 영월과 영춘 어간에 있다’는 고문서 기록 하나에 의지했다고 한다. 하지만 와석골에 와보니 이 깊은 골짜기에서 약초 캐고 화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은 김삿갓의 묘소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김삿갓이 고뇌의 젊은 시절을 보낸 산골

핍박과 천대를 피해 흘러 들어온 시인의 가족이 살던 집터와 시인의 묘소가 남아있는 하동면 와석리 어둔마을은 산 깊은 영월에서도 깊디깊은 오지였으나, 몇 년 전 시인의 묘소 근처까지 제법 번듯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뚫렸다.

계곡 옆 비탈밭 한가운데 봉분 하나만 달랑 있던 초라한 묘소는 1980년대 후반에 새롭게 단장되었다. ‘詩仙 蘭皐 金炳淵之墓’라는 소박한 빗돌은 고뇌로 이 땅을 떠돌던 방랑시인의 흔적을 알려준다.

김삿갓 집터는 묘소 앞의 ‘시선 당집’에서 계곡 길로 들어선다. 시인이 삿갓 쓰고 집 떠날 때 걸었던 산길은 지게 지고 겨우 드나들 정도로 좁았지만, 이젠 승용차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널찍하게 변했다. 온갖 들꽃들 화사하게 피어난 큰길서 벗어난 뒤 정겹게 흐르는 계류 건너 오솔길로 들어가면 이내 방랑시인의 집터다.

시인의 집은 흔히 말하는 명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월 좋게 음풍농월할 만한 곳도 아니다. 앞마당도, 텃밭도, 지붕 위로 보이는 하늘도 모두 손바닥만하다. 하기야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어려운 판에 어찌 집터를 제대로 잡을 수 있었을까.

김삿갓 시인의 집터는 묘소 앞에서 1.7km 걸어가야 한다. 천천히 걸어도 왕복 1시간~1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한 산책길이다. (자세한 정보는 김삿갓계곡 홈페이지www.kimsagat.or.kr 참조. 033-374-1660)

방랑시인의 생애와 문학세계 엿보기

한편, 2003년 노루목 김삿갓유적지에 건립한 김삿갓문학관은 김삿갓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김삿갓의 발자취를 찾아 일생을 바친 고 박영국 선생의 김삿갓 연구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김삿갓 관련 자료를 상영하고 있다. 개관시간 매일 09:00~18:00. 요금 일반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전화 033-375-7900.

김삿갓유적지가 있는 김삿갓계곡의 원래 이름은 마을 이름을 딴 와석계곡. 그런데 김삿갓 시인의 묘소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계곡 이름도 자연스레 김삿갓계곡으로 바뀌었다.

현재 예술인촌, 조선민화박물관, 묵산미술관 등이 자리잡고 있는 김삿갓계곡은 최근 문화와 예술을 아우르는 테마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입장료와 주차료는 없다.

교통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제천 나들목→ 38번 국도→ 영월→ 88번 국가지원지방도→ 하동면 각동리 삼거리(좌회전)→ 7km→ 옥동리 삼거리(우회전)→ 5km→ 김삿갓 유적지. 서울 기준 3시간 소요. △동서울→ 영월= 매일 20여 회(06:30~19:30) 운행, 무정차 3시간, 직행 4시간 소요. 요금 10,300원. △청량리역→ 영월역= 매일 6회(08:00~22:00) 운행. 토·일요일엔 새마을호 1회(08:25), 무궁화호 1회(23:00) 증편. △영월→ 김삿갓유적지(노루목행)= 매일 6회(06:20 08:30 11:00 14:00 16:00 18:40) 운행. 50분 소요. 요금 2,540원.

숙식
김삿갓민박(033-374-9595), 김삿갓펜션(033-374-1660~1), 밤나무집(033-374-9198) 버들고개민박(033-374-9208) 등 민박과 펜션이 많다. 이외에도 노루목상회(033-374-2738), 떠돌이화가까페(033-374-0018), 시가흐르는마을(033-374-8433) 등 차 마실 곳과 식당도 여럿 있다.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