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비, 첫 시동을 걸다

‘美, 고유가 시대에 소형차 불티.’

요즘 석유값이 치솟으면서 유지비가 적게 드는 소형차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미국 시장에서는 도요타의 코롤라나 혼다의 시벅, 폭스바겐의 제타 TDI와 같은 소형차들이 강세다. 사회적으로 볼 때 소형차들은 차량 세금이 높고 고유가가 재연될 때마다 눈길을 끌어왔다.

소형차의 대표주자 폭스바겐의 비틀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으로 탄생했다.

1930년대 독일에서 개발된 폭스바겐 비틀은 경제적인 소형 엔진을 개발하고자 했던 히틀러의 바람대로 저렴한 국민차로 출발했다. 독일 국민들의 차였던 비틀은 59년 미국에 수출되지만 나치의 군용차라는 오명 때문이었는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독일 나치의 차는 70년대 이후 미국에서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부활해 급성장한다.

당시 ‘Think Small (작게 생각하라)'이라는 획기적인 광고 캠페인 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경제적인 차라는 점이 인기를 얻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비틀을 새로운 캐릭터로 개발한, 가장 미국적인 기업 월트 디즈니가 든든한 원군이었다. 디즈니는 비틀을 가장 미국의 강력한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한다.

월트 디즈니가 비틀을 캐릭터로 삼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딱정벌레처럼 생긴 비틀을 친숙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이들이 동글동글한 얼굴을 가진 비틀을 좋아했다. 비틀의 이야기는 70, 80년대 TV 드라마 ‘허비 시리즈’로 인기를 끌게 되고 당시 유년기를 보냈던 미국인들에게 비틀은 우리의 꼬마자동차 붕붕처럼 향수를 자극하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된다.

2005년 개봉한 디즈니 영화 ‘허비, 첫 시동을 걸다’는 이러한 미국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탄생된 영화다. 달리 말하면 이러한 문화적 이해 없이 보면 평범한 아동용 영화일 뿐이다. 줄거리는 선악 구도가 명확하고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해 승리하는 스포츠 영화의 전형을 띠고 있다.

주인공 매기(린제이 로한)는 전통적인 카레이서 집안의 막내딸로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자동차 경주 나스카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매기 역시 그 피를 물려 받아 능력있는 카레이서가 되고 싶어하지만 딸을 과잉 보호하는 아버지 탓에 꿈을 접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대학 졸업 후 스포츠 전문 유선방송 ESPN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던 매기는 우연히 중고차 시장에서 60년대 폭스바겐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고물 폭스바겐 허비에겐 놀라운 힘이 있다. 꼬마 자동차 붕붕처럼 허비 역시 일개 고철덩어리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자기 의지대로 매기를 자동차 경주에 끌어들이는 허비. 허비를 통해서 메기는 자신의 꿈에 한 발짝씩 다가간다.

독일에서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더욱 인기 있었던 비틀. 경차의 경제성도 그 이유지만 ‘딱정벌레’라는 별명까지 붙어 친근감 있는 만화적인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 인기의 가장 큰 비결이었다.

월트 디즈니는 이러한 비틀의 상품성을 놓치지 않고 비틀을 70년대 문화 아이콘으로 탄생시킨다. 그리고 2005년 영화에서는 ‘친근함’을 무기로 갖고 있는 ‘린제이 로한’까지 전면에 내세우며 70년대 향수를 느끼고 싶은 중년층과 아이돌 스타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10대들을 모두 잡는데 성공한다.

성공한 캐릭터와 아이돌 스타와의 만남, 이 둘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영화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개봉 당시 두 달간 6,0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는 비틀과 린제이 로한의 팬들을 위한 영화다.

폭스바겐의 캐치프레이즈 ‘Think Small’이 문득 영화 관람층을 지칭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니 말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