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성두 이주헌의 명화읽기 / 노성두·이주헌 지음 / 한길아트 발행 / 2만2,000원

드넓고도 고혹적인 서양화의 세계로의 박학다식한 길라잡이로 인정받고 있는 두 사람, 노성두 씨와 이주헌 씨가 함께 책을 펴냈다.

이들은 이미 40, 50권에 이르는 미술 관련 저서와 번역서를 내놓은 바 있는 베테랑이다. 노 씨가 주로 고대 및 르네상스 미술에 관심을 가져 왔다면, 이 씨는 유명 미술관 기행문이나 어린이용 명화 해설서처럼 좀더 대중적인 주제로 집필 활동을 해왔다.

10여 년간 꾸준한 저작 활동을 통해 묵직한 필력까지 갖춘 이 ‘그림 읽어주는 남자들’은 르네상스부터 현대 추상미술에 이르는 서양미술 700년사를 횡단하며 독자에게 명화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감상 여행의 전반부는 노성두 씨가 이끈다. 르네상스 미술에 천착해온 전문가답게 노 씨는 이 문화적 황금기를 뭉뚱그리지 않고 3기로 구분해 시기별 대표작에 톡톡 튀는 해설을 가미한다.

양치기였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화가에게 발탁돼 재능을 꽃피웠다는 14세기 이탈리아 화가 조토를 앞세워 필자는 문화의 암흑기였던 중세에 찾아든 여명을 보여준다.

이어 고대 그리스 미술을 예술적 지향으로 삼아 정진했던 15세기의 성과를 조망한 뒤 16세기로 건너간다. 이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3대 거장 다 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가 르네상스 미술의 꽃망울을 활짝 터뜨렸고, 유럽에서도 뒤러, 브뢰겔, 홀바인을 비롯한 거장들의 붓 끝에서 명화의 아취가 그득했다.

르네상스기를 넘어 바로크 시대로 명명되는 17세기는 이탈리아의 기득권이 점차 해체되고 유럽 각국에서 고유한 양식이 자리잡는 시기이다. 강렬한 명암법의 카라바조, 플랑드르·네덜란드 미술의 선구자 루벤스·렘브란트가 심미안을 매혹한다.

18세기부터는 이주헌 씨의 차분한 문장이 독자를 인도한다.

바로크 미학에 화사한 가벼움을 가미한 로코코 시대는 저물어가는 귀족층의 미감이 마지막으로 발휘된 때이다. 프랑스는 로코코 회화를 이끌며 유럽 미술의 신흥 중심지로 부상한다.

시민혁명·산업화의 격변을 거치며 시대의 주류로 부상한 부르주아는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소박한 미의식을 품은 자들이었다. 다비드, 고야, 컨스터블 등은 단순하고 정직한 조형을 바탕으로 신고전주의라 불리는 조류를 캔버스에 체현했다.

부르주아 미학이 무르익어 다채로운 예술 사조로 구현된 19세기는 회화의 백가쟁명 시대라 할 만하다.

신고전주의와 대립각을 세우며 감성을 앞세운 낭만주의를 거쳐 세기 중반부터는 사실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가 공존하며 새로운 미학을 모색했다. 고흐, 밀레, 모네, 르누아르 등 오늘날 최고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타 화가’가 즐비했던 시절도 바로 이 때다.

표현주의·야수파·입체파를 필두로 추상 표현이 전면에 부상한 20세기 미술을 마지막으로 두 노련한 도슨트와의 명화 순례는 끝을 맺는다.

74명의 걸출한 화가를 지면에 불러내 서양 회화의 변천사를 서술하는 이 책의 외양은 제법 딱딱한 학술교양서의 그것과 닮았다. 하지만 78점의 명작을 들여다보는 두 필자의 눈길은 격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객관적 지식보다는 주관적 느낌으로 작품을 대한다.

넉넉하게 인용된 인문학적 상식이나 화가들의 뒷얘기를 논외로 한다면 필자들이 작품마다 3페이지씩 늘어놓은 수준으로 그림 해설을 하는 데에는 색과 조형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면 충분하다.

도미에의 ‘세탁부’를 보며 “아이의 손을 꽉 쥔 든든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두 사람이 그 어떤 어려움도 끝내 이겨낼 것”임을 믿는 데에,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린 까닭이 “별까지 걸어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보는 데에 뭐 그리 대단한 교양이 필요하겠는가.

그림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감상하는 독자가 많이 늘어나길 두 필자는 바라는 듯싶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