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넓은 미국에서 가장 부러운 중 하나가 곳곳에 파랗게 펼쳐진 잔디밭이 아닐까 한다.

내가 사는 텍사스도 마찬가지다. 간혹 푸른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속삭이는 바람에 비단결처럼 일렁이는 작은 군무를 볼 때면 과연 그래서 세계 사람들이 미국이란 나라에 몰려드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아기의 속살같이 고운 빛깔의 잔디가 눈앞에 있을 때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도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달리고 뒹굴고 싶은 맘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맨발로 뛰어든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그것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일 뿐이다. 미국인조차 정원에 아름다운 잔디를 가꾸고 있어도 맨발로는 다니지 않는다. 왜 그럴까? 미국인들은 유달리 자연보호 의식이 강해 잔디에 상처를 내는 것을 참지 못해서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바로 개미 때문이다. 글쎄, 내가 다른 주에는 살아보지 못해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이곳 텍사스 개미는 한마디로 ‘잔인’하다. 야성적인 카우보이 지방에 살다보니 개미들도 생존력이 유달리 강해 그런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보통내기가 아니다. 한국의 개미들은 잘 물지도 않거니와 문다고 하더라도 잠깐 따끔할 정도에 그친다. 조금 덩치 큰 시골개미가 물어 피부가 발갛게 붓기도 하지만 개미에 물려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텍사스 개미는 그렇지 않다. 막말로 말하면 ‘깡패 개미’다.

도대체 이놈들이 뭘 먹고 살길래 그럴게 지독한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작은 개미나 큰 개미나 할 것 없이 일단 물렸다 하면 엄청 아프다. 따끔거리는 정도가 아니다. 퉁퉁 붓고 다음날은 고름이 나오고 심지어 일주일 넘도록 벅벅 긁어야 할 때도 있다.

개미 알레르기가 있는 몇몇 사람들은 목숨까지 잃어 종종 지역뉴스에 보도되기도 한다. 이 정도 수준이면 ‘살인 개미’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개미가 흙을 지상으로 퍼내는 철이다. 잔디 위에 검은 흙이 소복이 쌓여 더미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개미들 짓이라고 보면 된다. 개미 사회에서 집짓기 시즌인지 아니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출산시즌인지 모르겠지만 이 때의 개미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듯하다.

한번은 호기심 삼아 잔디 위의 흙더미 내부를 긴 나뭇가지로 파헤쳐본 적이 있었는데 그 속에 하얀 개미알들이 소복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무심코 슬리퍼를 신은 발로 그것을 건드렸다. 그러자 내 발은 곧바로 ‘개미밥’이 되었다.

수없는 개미들이 달라붙어 무는데 집에 와서 보니 발이 퉁퉁 붓고 고름이 나오고 해서 눈으로 못볼 지경이었다. 난 개미집을 쑤셔 엄청나게 고생했던 것이다.

그래서 개미철에 어린 자녀를 둔 미국인 부모들이 아이들을 밖에서 놀게 할 때 반드시 양말을 신기고 양말 위로 벌레?는 약을 발라서 내보내는 이유를 이제는 이해하게 됐다.

개미가 흙을 밖으로 내보내는 지금, 잔디 위를 맨발로 밟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아름답게 보이는 푸른 잔디엔 ‘독’이 들어있다.

조심하자, 개미독!

조선주 통신원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원 재학)

한국과 다른 미국의 현충일 분위기

미국의 현충일이랄 수 있는 미모리얼 데이(Memorial Day, 5월의 마지막 월요일)가 지났다.

한국의 현충일은 공휴일이라서 늦잠을 자기도 하지만, 오전 10시 묵념 싸이렌이 울리면 순국 선열을 추모하기 위해 잠시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경건한 날이다. 게다가TV에서도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틀고 또 튼다.

괜히 이날 눈치없이 골프 치러간 공직자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다. 이것이 한국의 현충일 풍경이다.

그러나 미국의 Memorial Day는 이런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

미국의 휴일은 대부분 월요일로 못박아 그 전 주말부터 이어지게 황금연휴로 만들어 놀러가기 좋게 되어 있다. 또한 한국에서는 입춘, 하지, 동지 등 절기를 표시하는 날이 있지만 미국에는 그런 날이 별도로 없는 대신 공휴일이 절기 변화와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Memorial Day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서머타임도 이날부터 적용된다.

그럼 여름의 끝은? 노동절(Labor Day, 9월 첫 째 월요일)이다. 여름 휴가도 보통 이 두 날 사이에 정한다. 여름의 정점은 바비큐와 불꽃놀이의 날인 7월 4일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이다.

Memorial Day가 가까워 오면 방송사들은 바쁘다.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는 시즌 피날레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여름을 겨냥해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마찬가지로 노동절 때도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기 때문에 또 방송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인기없는 프로는 여지없이 폐지된다.

주부들도 Memorial Day에는 들뜬다. 백화점마다 휴일이 낀 주말에 빅세일을 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미국에는 세일이 왜 그렇게 많냐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거의 매일 세일을 광고하니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진짜로 값싼 세일을 알아내는 요령이 필요하다.

휴일이 계절과 연관되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백화점들이 그때그때 어떤 상품 판매에 주력하는 지 대략 알 수 있다. Memorial Day는 여름의 시작이니까 캠핑, 바비큐 용품 등 여름과 관련된 세일이 많다. 그리고 오리건 지역은 우기의 끝 무렵이기 때문에 페인트 세일을 이때 많이 한다.

또 6월은 졸업 시즌이니까 선물로 많이 나가는 카메라나 노트북 같은 소형 전자제품 세일을 잘 활용하면 싸게 살 수 있다. 연식이 바뀌기 전에 하는 자동차 세일도 여름에 많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의 회계년도가 9월에 시작하기 때문에 재고정리 같은 파격 세일은 8월에 집중되어 있다.

아무튼 내가 사는 포틀랜드는 지금 비가 내리지만 Memorial Day은 한국과 달리 신나는 날이다. 뜨거운 태양을 즐기게 될 휴가 시즌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민혜진 통신원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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