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녀'의 탄생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책 표지
그 여자아이는, 그러니까, 좀 복잡한 여자아이다.

‘여자아이’라는 단어 앞에 ‘복잡한’이란 수식어가 사용된다는 것 (‘순진한’, ‘귀여운’, ‘새침데기’, ‘말괄량이’ 따위 대신) 역시 복잡한 일임에 분명하다. ‘복잡한 여자아이’란 우선 그리 흔치도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어른들에게 있어 맘 편히 다루기 곤란한, 난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여자아이의 복잡함에 대해 살펴보자 - 채 열 살이 되지 않은 이 어린 소녀를 ‘착한 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쁜 아이’라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

아이는 아이이면서도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덕분에 여자아이는 ‘권선징악’으로부터 자유로우며 고리타분한 도덕적 ‘교화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아이가 ‘동화’ 속의 주인공이란 사실이다.

(여느 동화 속의 주인공들과는 달리) 여자아이는 가련한 고아나 헐벗은 가난뱅이가 아니다. 그렇다고 더없이 아름다운 공주이거나 고결한 부자인 것도 아니다. 여자아이에게는 자신을 핍박하는 계모나, 협력관계나 적대관계를 이루고 있는 형제자매가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여자아이는 ‘아주 먼 옛날 옛적에’ 살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여자아이는 특별한 모험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 모험은 다른 동화들처럼 극복해야 할 고난이나 운명의 시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모험이 시작된 것은 어느 따뜻한 오후 여자아이가 문득 무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저 심심했다는 것이다. ‘권태’를 느낀다는 것 - 그것은 분명 ‘현대성’의 한 편린이다.

이쯤 되면 여자아이는 ‘이름’을 가져야 한다. 소녀의 이름은 ‘앨리스’ - 1865년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1832-1898)에 의해 창조된, 너무나도 유명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배경이 되는 ‘이상한 나라(Wonder Land)’는 말 그대로 참으로 이상한 곳이다. 그곳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며 비논리적인 공간으로, 뒤죽박죽 황당무계하며 모순투성이 수수께끼와 얽히고설킨 퍼즐조각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예의 ‘복잡한 여자아이’인 앨리스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이상하지 않을 리가 없다. 나이를 먹으며 유연한 상상력을 치명적으로 상실한 많은 어른들은 그러한 설정을 ‘어린애들이 읽는 동화가 다 그렇지, 뭐’하고 무심히 넘겨버린다. 그러나 과연, 동화는 정말 다 그러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상함’은 다른 여느 동화들의 ‘이상함’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것이다.

(우리는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은 줄만 알았던 백설공주가 왕자의 입맞춤으로 되살아난다든지, 마법사의 도움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신했던 신데렐라가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다시 볼품없는 부엌데기로 돌아온다든지 하는 동화 특유의 ‘이상함’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요컨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기존의 동화들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낯선 요소’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 선악의 구별이 모호한 인물들의 즉흥적인 태도와 무의미한 행동, 부조리한 사건과 상황의 전개, 아이러니와 패러디가 주를 이루는 언어적 유희, 고정관념의 전복과 진지함에 대한 풍자,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와 도덕적 교훈의 부재 등등.

이 특별한 동화의 중심에 바로 그 소녀, 앨리스가 있다. 장-자크 르세르클을 위시한 여러 학자들이 그들의 공동 저서인 <앨리스>를 통해 이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소녀 앨리스를 집중 분석하고 있다.

그들은 결코 ‘착하고 예쁘고 가련한 여자아이’가 아닌 앨리스가 기존의 동화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복잡한 여자아이’로서의 개성을 가진 현대적인 소녀임에 주목한다.

“이 여자아이는 자율적이다. 부모로서의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지는 않지만, 앨리스의 삶은 (학교 안 혹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주입의 대상인 유용한 지식보다는)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 앨리스는 순진하다기보다는 발랄하다. (물론 앨리스가 ‘부도덕’한 것도 아니다. 앨리스는 항상 가정교사의 행동 지침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앨리스는 ‘무도덕’하다. 앨리스는 이런 종류의 행동 지침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세계에 너무도 빨리, 그리고 너무도 잘 적응한다. 앨리스는 순수하다기보다는 무책임하다(인생에 대한 책임감은 조만간 회복될 것이다). 자주적이라는 단어에 이 모든 기질이 포함된다.”

앨리스는 또한 ‘호기심’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호기심, 하면 떠올리는 또 다른 인물은 바로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다. 앨리스는 앞뒤 가리지 않고 어두컴컴한 토끼굴로 뛰어들었고, 판도라는 스스로의 욕구를 억누르지 못하고 금지된 상자를 열었다.

▲ 루이스 캐럴의 사진

동화 속의 소녀도 신화 속의 여인도 모두 모험에 몸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모험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잘 알려진 대로 판도라의 호기심은 파멸과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전통적인 가치관에 있어 언제나 (특히 여자의) 왕성한 호기심은 그리 권장할 만한 품성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앨리스의 경우는 다르다.

“사실 오늘날 앨리스를 높이 평가하게 만드는 점이 바로 이러한 충동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충동적인 성격은 어리석음이나 덤벙거림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제 손 안에 움켜쥐는 능력,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능력, 행동하기 이전에 의견을 묻지 않는 능력인 것이다. 앨리스의 모험 일정은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 앨리스가 그 모험의 일정을 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가족이나 사회가 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앨리스는 혼돈과 혼란을 경험한다. 그것은 무모하고 충동적인 호기심의 대가다. 그러나 혼돈과 혼란을 감내하며 모험을 이어가는 앨리스는 판도라와는 달리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은 터득한다. ‘이토록 이상한 세계 속에서 과연 나는 누구란 말인가?’

“앨리스는 여자아이들에게 금지된 일들, 즉 모험을 감행한다. 모험은 셀 수 없이 많으며, 이 모험들은 공간적(앨리스는 앞으로 나아가고, 탐험하고, 길을 잃어버린다), 시간적(거울 나라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상처를 입기도 전에 벌써 고통의 비명 소리가 터진다), 육체적(앨리스의 키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끊임없이 반복하는데, 이것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변신하게 됨을 은유적으로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정신적(앨리스는 숲을 지나가면서 자기 이름을 잊어버리는데, 그래서 아기 사슴과 우정을 맺게 되며, 자주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인 모험이다.”

계모에게 억울하게 핍박받는 착하고 가련한 소녀도 아닌, 백마 탄 왕자의 입맞춤으로 새로운 삶을 얻는 아름다운 공주도 아닌, 앨리스는 언제나 앨리스 자기 자신이다. 이상한 모험 속에서 용기와 지혜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온전한 단독자 - ‘현대 소녀’ 앨리스의 수많은 후예들이 지금 21세기의 지구를 누비고 있다.


이신조 소설가 coolpo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