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연꽃과 노랑어리연꽃

여름이다. 이젠, 물에 피는 꽃들이 먼저 생각나는 것을 보니 계절이 바뀌었음을 더욱 실감한다.

묵상을 할 수 있을 만큼 고요한 여름날 아침, 잔잔한 수면 위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나 그 풍광을 생각할 때면 우리는 흔히 연꽃과 수련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알고 보면 연꽃은 물속 뻘에 강인하게 뿌리를 뻗으며 자라는, 잎도 꽃도 왕성하게 물 위로 올라오는, 그래서 정적인 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역동적인’ 꽃이다.

그렇다면 수련은 어떨까? 수련은 오래 전 우리 땅에 들어와 이젠 우리꽃이라고 말하더라도 그리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즈음 만날 수 있는 수련은 온통 개량된 탓에 예전의 얌전함 대신에 화려하고 큼직하고 꽃잎도 뾰족해져 왠지 정이 덜 간다.

그러나 유명한 산천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의 땅 이곳저곳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어느 연못이나 저수지에서 문득 마주치는, 아주 애잔하게 피어있는 고운 꽃송이들을 더러 보았을 것이다. 그 꽃들이 바로 어리연꽃과 노랑어리연꽃이다. 진짜로 물 위에 피는 꽃이라 생각하면 된다.

어리연꽃은 주로 중부이남 지방의 물에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수염 같은 뿌리가 물속 땅에 자리잡고 가늘고 긴 줄기의 마디에 1~3장의 잎이 달리며 잎자루가 길어서 물 위로 떠오른다.

방패형의 잎은 작게는 7cm, 크게는 20cm정도까지 자라는데 표면은 광택이 일어 반질거린다. 잎자루는 길이가 1~2cm인데 줄기와 연이어지며 아래가 두개의 귀처럼 확대되어 꽃차례의 밑부분을 감싼다.

꽃은 여름에 핀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자라고 그 위로 지름이 2cm 남짓한 꽃송이들이 피기 시작한다.

이 흰 꽃받침잎 가장자리는 물론 노란 안쪽부분 할 것 없이 마치 술이 달린 듯 가느다란 털이 달리는데 이 식물의 가장 아름답고 개성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열매는 삭과로 타원형이며 익으면 물속으로 다시 잠기게 된다.

노랑어리연꽃은 거의 모든 특성이 어리연꽃과 비슷하지만 꽃이 훨씬 커서 3-4cm정도 되고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꽃이 노란색이다. 이 노랑어리연꽃이 피어 있는 여름 연못은 정말 아름답다.

한방에서는 노랑어리연꽃을 주로 이용한다. 생약명은 행채(荇菜)라고 하며 잎, 줄기, 뿌리를 모두 쓴다. 간과 방광에 이롭고 해열, 이뇨, 해독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임질, 열과 한기를 조절하는 여러 증상에 처방한다. 부스럼이나 종기는 생잎을 찧어 상처난 부분에 붙인다,

최근 수생식물의 중요성과 연못과 같은 친수 공간이 조경에 강조되면서 어리연꽃이나 노랑어리연꽃과 같은 물 위에 뜨는 우리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식물들은 넓은 연못에 수련 대신 심어 키우면 훨씬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또 돌확이나 옹기항아리에 심어 실내나 정원 한쪽 공간에 놓고 보는 것도 우아함을 더한다. 이 경우 물을 갈아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어리연꽃이 자라는 곳은 서산의 한 저수지이며, 노랑어리연꽃 무리는 국립수목원(광릉) 수생식물원에 찾아오면 여름에 어김없이 만날 수 있다.

이 꽃들을 바라보면 이토록 좋은 우리 수생식물 자원을 두고 왜 그동안 외래식물만을 곁에 두고자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게다가 수질오염이 가속화되고 우리 주변에 식물 중에 수생식물의 감소속도가 가장 두드러지니 다급한 마음마저 든다.

세상을 살다보면 자연을 사유하며 산다는 것이 점점 의미 있어진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무더운 한여름 물가에 서서 이 고운 우리 꽃들을 한껏 마음에 담으며 그 아름다운 시간들을 갈무리해두고 싶은 마음 문득 간절하다.

※ 사진 노랑어리연꽃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