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산에 가면 잎 달린 줄기들이 쭉쭉 올라가서 시원시원한, 어찌보면 이국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 나무가 있다. 그 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아직은 덜익은 열매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모양이 동글동글, 다닥다닥, 그리고 큼직하다면 십중팔구 가래나무일 것이다.

가래나무를 가장 쉽게 소개하면 우리나라에서 야생하는 산호도나무라고 하면 어떨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호도나무는 그 고향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더듬어 추적하면 기원전 1세기경에 중국이 티베트에서 종자를 들여와 심어 기르던 것을 약 700년 전에 우리나라 사람 유청신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종자와 묘목을 가져와 심었다는 것이 유래설이다.

호두나무는 엄격히 말하면 사람들이 그 과실을 얻기 위해 심은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 반면에 우리 땅에서 군락을 이루며 스스로 자라는 토종 나무는 가래나무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가래골 즉 가래나무가 많은 골짜기란 지명이 있는 것으로도 이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가래나무는 가래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의 키가 큰 나무이다. 다 자라면 20m를 넘기도 한다. 줄기는 굵고 통직하며 세로로 갈라지는 회갈색 수피를 가진다. 잎은 여러장이 깃털모양으로 달리는 우상복엽이다.

손가락 하나 정도의 길이를 가지는 긴타원형의 소엽이 적게는 7개에서 많게는 17개까지 나란히 달리며 이 소엽이 만든 복엽은 가지 끝에서 마치 한 자리에서 난 듯 둥글게 모여 달려 싱싱하고 힘차게 느껴진다. 한여름 그 잎새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시원스럽다. 호두나무는 그 작은 잎들이 5-7개로 수가 적어 가래나무와 구별할 수 있다.

꽃은 이미5월에 폈다. 여느 꽃나무들처럼 화려한 꽃잎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금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을 터.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열매들이다. 이 둥근 열매가 다 익어서 벌어진 것을 보면 그때는 모든 이들이 가래나무와 호도나무가 형제나무인 것을 알게 된다.

두 개씩 마주 달리는 호도나무 열매와는 달리 여러 개가 길게 모여 달리는데 녹색의 겉껍질이 벌어지면 그 속에는 호도와 비슷하지만 조금 작은 가래나무의 열매가 나온다. 그 딱딱한 껍질을 제거하면 역시 호도처럼 속살이 나오는데 호도처럼 맛은 빼어나지 못해도 먹을 만하다.

가래나무는 한자로는 추(楸)자로 나타내어 추목이라고 부르며 열매는 추자라고 하고, 호도를 핵도라고 부르는 것과 구별하여 산핵도라고도 한다.

옛 사람들은 조상의 묘가 있는 곳을 추하, 산소를 찾는 일을 추행이라고 하는데 가래나무도 조상의 무덤가에 심는 나무들 중의 하나여서 후손들이 효도를 하기 위해 무덤가에 심어 가꾸었다 하여 추(楸)자를 써서 추목으로 불렀다고 한다.

요즈음 가래나무는 조경수로써 조금씩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열매의 쓰임새이다. 가래는 껍질이 호도보다도 훨씬 더 단단하여 좀처럼 깨어지지 않으므로 불가(佛家)에서는 이것을 둥글게 갈아 염주나 단주를 만들었고, 일반인들은 또 향낭이나 노리개 또는 조각의 재료나 상감을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이것은 가래의 모양과 특성상 다듬기 좋아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나쁜 기운을 쫓아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즈음도 노인들이 호도와 비슷한 모양이나 작은 것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을 텐데 이것이 바로 가래이다.

예전엔 분명 다소 미신적인 생각으로 습관처럼 가래를 손안에 가지고 있었지만 현대의학이나 한방으로 볼 때도 그렇게 하면 혈핵순환이 촉진되고 지압의 효과를 줄 터이니 병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시골에 가면 가래탕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가래로 만든 음식이 아니고 덜 익은 가래를 두들겨서 강에 넣으면 그 독성으로 인해 물고기가 잠시 기절해 물에 뜨는데 그때 물고기를 잡는 일을 말한다.

약으로 쓰이며, 열매의 기름도 음식에 이용했으며 어린 잎이나 꽃대는 봄나물로도 식용되었다. 물론 나무가 굵으니 목재로도 이용되는데 특히 비행기의 가구재와 총의 개머리 판은 이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