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지음 / 조중빈 옮김 / 지식의 날개 발행 / 1만5,000원

곧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경영 혹은 처세술 분야의 리더십 관련 서적을 읽다보면 내용의 수준을 떠나 불편한 마음이 들곤 한다. 민주주의 가치마저 상품의 논리에 포섭돼 가는 형국이랄까.

이런 책들은 독자에게 리더가 돼야 한다고 다그치치만 대개의 이유는 ‘그래야 주변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중책을 맡길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품성을 높여야 치열한 경쟁을 뚫을 수 있다는 적자생존의 조언에 다름아니다.

훌륭한 인격 함양 혹은 사회 진보를 위한 봉사 같은 걸 입에 담으면 어쩐지 머쓱해지는 분위기다. 그래서 상품성 내지 이미지가 좋은 개인에게 민주주의를 이끌어갈 리더를 맡기라는 것이 어느덧 우리 사회의 불문율이 됐다고 말하면 그것은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

평생을 리더십 연구에 천착해온 제임스 번스 교수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도 얼핏 이런 분위기를 거드는 ‘그저 그런’ 책일 거라는 선입견을 갖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리더십은) 언젠가는 역사나 철학처럼 학문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밝히며 써내려간 노학자의 저서는 오히려 ‘행복을 추구할 기회를 모든 인민에게 확대해 나가는’ 정치적 리더십이 시대의 요청임을 주장하는 격문이라 봐도 무방하다.

1930년대 대공황의 수렁에서 미국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전공한 그는 루스벨트 외에도 엘리자베스 1세, 펠리페 2세, 로베스피에르, 간디, 드골, 마오쩌둥, 고르바쵸프 등 다양한 정치 지도자들의 사례를 통해 그가 주창하는 ‘변혁적 리더십’의 개념을 풍성히 뒷받침한다.

번스 교수는 “나쁜 리더십은 없다”고 규정한다. 리더십이란 당연히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역사적으로 부도덕하게 변질된 경우가 많은 ‘카리스마 기반 리더십’이나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물밑 협상과 거래를 서슴지 않는 ‘거래적 리더십’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렇다면 그가 내세우는 변혁적 리더십은 전통적인 리더십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변혁적 리더십은 지도자-추종자의 이분법적 구도를 지양한다. 좋은 지도자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리더십에 추종자의 욕구를 투영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노자가 말한 ‘이끌되 지배하지 않는’ 덕성을 갖춘 자인 셈이다. 이런 리더십은 ‘대중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초적 지향점과도 맞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변혁적 리더십은 리더가 아닌 추종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행복추구권을 사회 구성원 전체로 확대하는 진보의 동력은 리더 개인이 아닌 추종자의 결심과 행동에서 나온다는 것이 번스 교수의 일관된 지적이다.

이때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동기 부여이다. 저마다의 목표, 희망, 공포로부터 한 차원 높은 욕구를 추출해서 집단행동을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간디의 비폭력·비협조 투쟁처럼 창조적 아이디어가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지도자-추종자를 단단히 묶어낼 변혁의 힘은 다름 아닌 도덕적 가치이다. 저자는 사회를 인간과 유리된 기계적 구조로 상정하는 기능주의를 단호히 비판하면서 추종자에게 도덕적 지향이 사회를 개선한다는 믿음, 즉 ‘집단적 효능감’을 부여하는 리더의 역할을 중시한다.

독자 중에는 번스 교수의 생각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을 듯싶다.

고도로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헌신할 만한 행복이란 게 과연 존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회의적일 수 있겠다. 나아가 그가 그리는 변혁적 리더란 제도적 민주주의 너머에 자리매김한 ‘초인적 존재’에 가깝지 않나 하는 의심도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런 존재가 있어야 앞으로의 진보를 감당할 것이라는 논리는 또 다른 엘리트주의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와 도덕을 앞세우는 저자의 ‘전통적 논리’가 옳고 신선하게 여겨지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저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기성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이렇게 살아도 될까’ 했던 우리 자신 모두에게 리더십을 성찰하는 계기가 될 법하다.


이훈성 기자 h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