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산낙지 전문점

▲ 연포탕
보통 식당에 들어가면 실내를 한 번 둘러 보게 된다. 음식 맛은 기본이지만 식사를 하는 장소의 분위기도 나름대로 중요해서다. 사실 그리 근사하지 않아도 맛만 좋으면 대부분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 반대로 맛보다는 실내 인테리어의 ‘멋’으로 구미를 끄는 곳도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건미촌. 빌딩 지하에 들어선 산낙지 전문점인 이곳에 처음 들어서면 그냥 나가고 싶은 손님도 있을 듯하다. 새로운 컨셉트로 멋을 내거나 실내를 최신 유행 모드로 꾸며 놓은 곳이 전혀 아니라서다. 혹 분위기 있는 곳을 찾아 기분을 내려는 젊은 커플들에게 외관상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손님이 그런 나가고 싶은 유혹을 조금만 견뎌낼 수 있다면 다음엔 맛의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인테리어에 없는 ‘멋’을 상쇄하고도 남기에 충분한 ‘맛’을 가지고 있어서다.

오히려 1970~80년대 식당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한 이 집의 낙지 맛 또한 그때 그 시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단골 손님들이 잊지 않고 꼭 찾는 대표 메뉴는 ‘무침’. 벽면에 멋없이 붙어 있는 메뉴판에는 그냥 ‘무침’이라고만 적혀 있지만 정확히는 ‘산낙지 회무침’이다.

보통 유명 낙지골목의 매운 낙지무침을 생각해 처음 온 손님은 이 메뉴를 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맛을 본 이는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

살아 있는 대발 낙지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미나리 쑥갓 등 여러 야채들과 함께 초에 묻혀 내는 것이 조리법. 때문에 낙지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혀 끝에 와 닿는 양념 맛은 살짝 매운 듯 새콤하다.

주인 박광치(63) 씨는 고향 전남 고흥에서 어머니가 뻘에서 잡아온 낙지를 무채와 함께 초무침 해준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어릴 때 먹던 그 맛을 위해 박 씨는 고향 양조장에서 가져온 유자액기스를 직접 발효시킨 식초로 맛을 내고 있다. 술안주로는 그만이다.

국물이 생각난다면 이 집에선 연포탕이 제격이다. 목포에서는 세발 낙지로 연포탕을 끓이는 경우가 많지만 이 집에서는 낙지의 깊은 맛이 나라고 대발낙지를 쓴다.

호박,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달여 만든 육수가 끓을라치면 큼지막한 산낙지를 가져다 넣어 주는데 조금 기다리면 낙지가 붉그스름하게 익는다. 이 때 국물도 붉그스름한 색으로 변하는데 한 숟갈 떠 마시면 시원하면서도 진한 낙지 맛이 입안에 느껴진다.

특히 이 집은 입구에 있는 수족관에 넣어둔 산낙지만을 쓴다. 냉동 낙지로 연포탕을 만들면 먹물이 터져 음식을 망치기 일쑤기 때문이다. 낙지 시세가 매일 변하는 탓에 값이 싼 날이면 주인 아주머니가 낙지 한마리씩을 더 넣어주기도 한다.

식사로는 ‘뚝배기 비빔밥’이 맛있다. 뚝배기에 여러 야채와 낙지를 넣고 뜨겁게 익혀 나오는데 흡사 전주판 낙지 비빔밥을 먹는 것 같다. 이 역시 메뉴판에 덤덤하게 ‘비빔밥’이라고 적혀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꼬막과 굴젓, 부치미 등은 이 집에서 언제나 푸짐하게 나오는 밑반찬인데 낙지 못지않게 맛있다고 소문나 인기가 높다.

메뉴
산낙지 회무침 2만원부터, 연포탕은 2만5,000원부터. 볶음과 불낙전골, 아구찜과 아구탕 등도 크기에 따라 대ㆍ중ㆍ소로 나뉜다. 보통 점심 식사용 뚝배기 비빔밥은 6,000원.

찾아가는 길
삼청동 거리 안쪽 성균관대 후문 올라가는 길 삼거리 초입. (02)737-5649


글·사진 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