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을 묻는다 / 고운기 지음 / 양진 사진 / 현암사 발행 / 1만5,000원

고려 후기 고승 일연(1206~1289)이 탄생한 지 올해로 꼭 800년을 맞는다.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고명(高名)은 익히 접했지만 일연은 우리들에게 아직도 친숙한 듯 낯선 존재이다. 불후의 명저 <삼국유사>가 아니라면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별로 떠오르지 않고, 떠올릴 것도 없는 인물이라고 보는 편이 오히려 정확할까.

하기사 세수 83세를 일기로 입적한 경북 인각사에 잔뜩 부서진 채로 세워져 있는 묘비-다행히 비문 사본이 월정사에 남았다-와 현존하는 두 권의 저서 외에는 그의 생애를 전해줄 자료가 전무하다시피한 사정도 이 소원함의 연유일 게다.

<삼국유사>를 학문의 지표로 삼고 정진 중인 소장학자 고운기 씨가 내놓은 근작은 700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풍화되지 않은 고승의 고고한 삶의 편린들을 찾아내 그러모은 작업의 결실이다.

비문은 희미해진 일연의 행적을 좇는 저자에게 지도 노릇을 해준다.

탄생지인 경북 경산, 배움을 위해 적을 둔 광주 무량사, 구족계를 받고 출가한 양양 진전사를 필두로 임금의 부름을 받아 불사에 전념한 강화도·개성·경주 등지를 거쳐 노모 봉양을 위해 임금을 졸라 말년에 돌아온 고향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10년도 넘게 전국 각지를 편력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한다.

물론 당시와 현재의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극은 너무 넓어 저자는 종종 실체가 덧없이 사라진 빈 절터를 밟고 서서 그저 곤혹스러워하기도 한다. 게다가 왕희지의 글자를 일일이 모아 만든 4,000자의 비문으로는 당시 최고위 승직인 국사(國師)의 반열에 올랐던 노승의 생애를 얼개만 보여주기에도 벅차다.

이런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저자는 다양한 우회로를 뚫는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종교 지도자가 겪었을 법한 시대적 상황을 적극 재구성함으로써 일연의 생애를 간접적으로 유추해보는 전략을 택한 것.

이를 위해 그는 삼국 시대와 고려조에 걸쳐 정치사·불교사·문학 등 전방위적 사료를 끌어들인다. 발품을 아끼지 않고 역사의 현장에서 취재한 지식과 이를 토대로 발휘한 상상력도 저자의 추론에 살을 덧붙인다.

필자는 <삼국유사>가 집필된 전후맥락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 명저의 미덕이 “(치밀하고 정성 어린) 현지답사와 더불어 이루어”졌으며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광범한 의미의 문화사”로 볼 만한 선구적 작업이란 점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꼼꼼한 현장 취재라는 일연의 실증적 방법론을 따라가며 일연을 기술한 이 책은 고승을 향한 이중의 헌사에 다름 아니다. 풍성한 자료들이 가끔 ‘일연’이라는 초점을 잃은 채 동원돼 전반적 구성이 다소 어수선해 보이는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

저자의 직접적 표현은 아니지만 이 책의 지향을 한마디로 압축하라면 ‘일연 평전’이 될 것이다.

평전 속에 비친 일연의 모습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의 침략기를 겪으며 저물어가는 고려 시대에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자 애쓴,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생애를 살았던 시대의 사부이다. 또한 그는 속세에 대한 미련 아니냐는 다그침이 무색하리만치 효심이 깊었던 아들이었으며, 민중의 삶에 한없는 애정을 가졌던 지식인인 동시에 타고난 문재를 감출 수 없었던 문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위인전 수준의 단면적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한계이자 숙명이다. 숙명이라 표현한 까닭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당대의 고승을 입체적으로 분석할 만한 사료가 우리 시대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이 책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이런 한계 상황이 우선적으로 고려된 이후에야 내려져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제작에는 줄곧 우리 문화 유적을 필름 속에 담아온 사진작가 양진 씨가 함께 했다. 광각렌즈를 자주 사용한, 중후한 톤의 사진들은 ‘일연을 묻는’ 일에 동참한 독자에게 시각적 미감을 덤으로 선사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