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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 프로그램의 월드컵 ‘올인’ 전략은 변죽만 울렸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안방극장을 장악한 가운데 이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TV 오락 프로그램들은 월드컵 특수에서 동떨어진 양상을 보였다.

2006 독일월드컵이 개막한 뒤 TV는 완전히 월드컵 차지다.

모든 경기가 지상파 방송 3사를 통해 중계방송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하이라이트, 분석 및 예고 프로그램 등 온통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이 방송 편성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뉴스 또한 국내외 중요 현안들은 뒷전에 밀린 채 월드컵 소식이 주류를 이뤄 스포츠뉴스를 방불케 한다.

이 같은 월드컵 열기에 TV 오락 프로그램들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KBS 2TV ‘해피 선데이’의 ‘날아라 슛돌이’,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을 찾아라’,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 등 방송사의 간판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비롯해 많은 오락 프로그램들이 앞다퉈 월드컵 특집을 제작했다. 인기 스타들을 대거 섭외해 독일 현지에 파견하는 등 엄청난 비용을 투자한 이른바 ‘올인’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들 월드컵 특집 프로그램은 수준 이하의 내용물을 시청자에게 선보이며 월드컵 열기 편승에 전적으로 실패했다.

천편일률적인 스타들의 현지 응원 화면과 중계방송 및 하이라이트를 통해 지겹도록 본 경기 장면의 재탕이 시청자의 호응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이경규가 간다’의 포맷을 고스란히 빌렸을 뿐 새로운 기획은 전혀 추가되지 않았기에 시청자들에게 식상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경기장 내 방송촬영 장비 반입이 불가능해 휴대용 캠코더로 촬영한 스타들의 응원 모습은 기념 촬영 수준을 넘어설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방송사들이 비싼 돈 들여가며 인기 연예인들에게 월드컵 구경 시켜준 것에 불과하다”며 전파·돈 낭비라는 비난을 쏟아 부었다.

시청률 또한 저조했다.

‘날아라 슛돌이’는 평소 10%대 후반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인기 프로그램이었지만 월드컵 특집에 이르러서는 10%대 초반으로 폭삭 주저앉았다. 신화, 박정아, 채연 등 인기 스타를 대거 앞세운 ‘X맨을 찾아라’는 시청률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SBS 특집 프로그램 ‘슈퍼 응원단 가자! 독일로’는 6~7%의 시청률로 월드컵 열기를 무색케 했다. 국내 응원 장면을 보여준 MBC ‘무한도전’은 ‘저질 방송’이라는 오명만 남겼다.

다만 원조 월드컵 관련 오락 프로그램인 ‘이경규가 간다’는 토고에 촬영팀을 파견해 현지 응원 모습을 영상에 담는 등 나름대로 신선한 기획을 곁들여 호응을 얻었다. 시청률 또한 10%대 후반에 이르는, 그나마 선전한 프로그램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방송사들이 엄청나게 공을 들인 월드컵 특집 오락 프로그램들이 연달아 고배를 마시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기획의 부재다. 출연진의 붉은색 셔츠와 말끝마다 따라 붙는 ‘한국 대표팀 승리’, 그리고 열띤 응원을 내세우는 비장함만이 존재해 출연진만 다를 뿐 똑 같은 화면으로 시청자를 만나는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의 국민적인 감흥에만 머물 뿐 4년이 지난 세월은 계산에 넣지 않은 결과다. 2002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이경규가 간다’의 확대재생산을 능가하는 요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맹목적인 월드컵 편승으로 획일적인 몰개성의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 이 같은 오락 프로그램의 무분별한 월드컵 편승 행태는 TV의 월드컵 전념 양상으로 인해 시청자의 채널 선택권이 극단적으로 축소된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TV 오락 프로그램들은 월드컵 피해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이경규가 간다’만이 월드컵 특집 기획으로 대성공을 거뒀고 2006년 오락 프로그램의 월드컵 대처 방안의 모범을 제시했다. 그러나 4년의 세월은 뭔가 새로운 것을 요구했지만 방송사들은 이에 부합하지 못했다.


이동현 스포츠한국 연예부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