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줄나무

후텁지근하던 날씨. 빗줄기 한 번 시원하게 내리고 나니 이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듯싶다.

바쁜 탓에 자주 못보는 옛 친구들이 아주 오랜만에 만나자고 해서 약속날짜를 잡았다. 재미있었던 것은 ‘그날 비가 오면’ 혹은 ‘비가 오지 않는다면’으로 가정하여 날씨에 맞는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은 모두 여전하여 이 여름날의 한 줄기 빗줄기는 우리들에게 특별한 감정이 불러일으키게 하는가 보다. 올 여름 이렇게 간간이 비가 내려준다면 즐거운 일들이 많이 생길 듯하다.

무더운 여름 숲에서 시원한 빗줄기를 만날 때의 청량함만큼이나 보기에 싱그럽기 이를 데 없는 나무가 있다.

바로 미역줄나무이다. 사실 나무이지만 크게 자라는 것도 아니고, 덩굴이라고 하지만 다래나 머루처럼 완전히 이리저리 감아가며 자라는 식물도 아닌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무심히 지나친다.

하지만 나무 줄기마다 환하게 유백색 꽃들이 가득 피면 그 꽃빛을 따라 마음마저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은은한 꽃향기가 스며 나오고 줄기와 잎새는 언제나 씩씩하게 푸르니 그 모습만으로도 싱그럽다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리는 나무다.

미역줄나무는 노박덩굴과에 속하는 덩굴나무이다. 산이 조금 깊다 싶으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더욱이 대부분 어른 허리 높이께쯤 혹은 무성하면 사람 키를 넘겨 무리지어 자라므로 숲 길을 걷다 보면 덩굴진 줄기들이 발목이나 배낭끈을 붙잡기도 하며,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앞길을 막기도 한다.

돌기가 빼곡한 붉은빛이 도는 줄기에는 손바닥만한 잎새들이 달리고, 여름이 되면 잎겨드랑이나 가지 끝에 꽃차례가 올라온다. 꽃 하나하나는 지름이 5mm정도로 작지만(작아도 자세히 보면 5장의 꽃잎과 5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로 구성되어 있다) 이 꽃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 전체적으로는 원추형의 꽃차례를 만든다.

가을이 되면 그 꽃잎들은 어느새 꽃가루받이를 완료하고 열매로 익어간다. 날개를 가진 동그란 열매들은 전체적으로는 연둣빛이 나는 유백색이지만 점차 끝이 붉게 익어가 아주 특별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미역줄나무는 지역에 따라 메역순나무, 미역줄거리나무, 노방구덤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꽃 등 나무 전체로 보이는 색감으로는 바다에서 나는 미역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어서 왜 미역줄나무란 이름이 되었을까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줄기가 미역의 딱딱한 줄거리와 같고 가지가 사방으로 무성하게 달리는 모습이 미역과 닮기는 닮았지만.

크게 알려진 용도는 없으나 척박한 도로 경사지에 심으면 비교적 쉽게 피복이 되고, 자유롭게 뻗어 열매를 매단 줄기는 꽃꽂이 소재로도 인기가 있다.

한방에서도 이용하는데 유명한 약재는 아니지만 항백혈병작용이 있다고도 한다. 항암성분에 대한 연구들도 더러 있지만 아주 깊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살충, 소염, 해독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새로 난 어린 순은 나물로도 식용된다.

알고 보면 새록새록 매력적인 미역줄나무. 장마철 무더위로 짜증이 나거들랑 지금 숲 속으로 가자. 그럼 한창 꽃을 피워낸 무성한 미역줄나무 줄기들이 빗줄기만큼이나 시원하게 맞이해 줄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