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리즈 호가드 지음 / 예담 발행 / 1만7,000원

지난해 5월 인구 12만 명의 영국 중소도시 슬라우에서는 진귀한 실험이 시작됐다. 심리학자, 경영 컨설턴트, 사회사업가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행복헌장 10계명’이 과연 실생활에 효험이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시도였다.

운동을 하라, 식물을 가꿔라, 하루 한 번 크게 웃어라 등등. 그리 심오해 보이지 않는 10가지 사항을 실천하면 정말 행복해질까. 시민 자원자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계명을 받잡고’ 보낸 3개월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국영방송 BBC에서 방영됐다.

다큐 속 슬라우 시민들은 이렇게 외쳤다. “정말 행복해졌다!”

<행복>은 슬라우 프로젝트를 기획한 행복 전문가 6명이 실험의 성공을 토대로 설파한 ‘행복해지는 법’(how to be happy)을 정리한 책이다.

자유 기고가·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엮은이 리즈 호가드는 슬라우 주민들의 기쁨에 겨운 탄성을 곳곳에 곁들이면서 총 17개의 키워드로 행복의 비결을 정리했다.

인생론·성공학·처세술 관련 서적을 몇 권쯤 뒤적여본 독자라면 이 책의 간결한 문장들에 담긴 내용이 그리 낯설지는 않을 듯싶다. 각기 학문적 배경을 달리하는 여섯 전문가가 내놓은 조언들은 ‘보편적 행복법’이라는 주제에 맞춘 듯 논리가 단출하다.

누구에게나 술술 읽히지만 시선이 오래 머물 내용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이 책은 조리있는 사전식 구성을 통해 차별화를 꾀한다.

17개 키워드 중 하나인 아이들(children) 편을 펴보자. 사이사이 파란색 굵은 글씨로 중간 제목을 달아놨다. 무엇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놀이가 중요한 이유, 사랑의 경계 가르치기, 함께 보내는 시간에 대한 잘못된 믿음, 당신은 어떤 부모인가 등등. 각 중간 제목에 속한 5개 안팎의 문단은 그 제목이 내포한 실천 명제를 간략하게 뒷받침한다.

물론 이런 명제들은 ‘아이들’을 상위항목으로 삼으며, ‘아이들’ 역시 다른 16개 단어와 함께 책의 총체적 주제인 ‘행복’에 수렴한다. 성생활이 불만족스러운 독자는 성생활(sex) 편을, 직장이 불행의 원천이라 여겨지면 일(works) 편을 찾으면 될 일이다.

“늘 가지고 다니며 언제든지 필요할 때마다 읽으라”는 엮은이의 제언은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한 수사가 아니라 책의 사전식 편집 방식에 부합하는 독서법인 셈이다.

틈만 나면 튀어나오는 ‘번호 매긴’ 실천 방법과 행복지수 측정 설문도 이 책을 범상치 않게 한다.

슬라우 실험의 지표였다는 행복헌장 10계명 외에도 ‘부부 10계명’ ‘자녀 행복 15가지 방법’ ‘가족 유대감 강화법’ ‘행복한 지역공동체 만드는 법’ 등 매끈하게 정리된 실행 항목이 책 도처에 배치됐다.

몇몇 항목의 말미에는 ‘나는 앞으로’와 ‘~을 할 것이다’라는 글자 사이에 몇 줄의 여백을 남겨둬서 독자가 직접 자신의 실천 의지를 문자로 표현하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책 앞 부분에는 슬라우 주민들의 행복지수 변화를 측정했던 설문을 그대로 옮겨 와 독자에게 자기 행복을 계량화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행복은 사소한 데에서 비롯한다’라는 진부한 명제를 신봉하는 이 책은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구체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그 실천을 격려하려는 사명에 충실하다.

하지만 슬라우 프로젝트의 성공에 기대고 있는 이 책이 정작 주민들이 행복을 성취해 가는 실제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일에 소홀한 것은 아쉽다. 무수히 나열된 실천 항목보다는 하나의 극적인 사례가 오히려 책에서 주장하는 행복법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덧붙이자면 행복을 얻는 일을 오로지 개인의 회심과 실천에만 짐 지우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결여된 행복론을 이 책 역시 답습한다는 점도 독자의 마음을 약간 답답하게 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