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와인 / 조정용 지음 / 해냄 발행 / 1만 9,800원

프랑스어로 성(城)이라는 뜻의 샤토(Chateau)는 포도를 재배·수확해 와인을 양조하는 생산단위를 일컫는다.

샤토를 운영하는 성주가 지닌 품성·철학·지식 등 총체적 인격이 그에 걸맞은 향미의 와인을 빚어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논리는 이 맛깔스러운 와인 안내서에도 유효하다. 흥미로운 상식이 숙성된 이 책은 드라이하기보단 열정적인 느낌을 준다.

국내 첫 와인경매사인 저자 조정용 씨가 해박한 지식으로 젠체하는 이가 아니라 부지런히 체험하고 감탄하는 ‘와인광’인 까닭이다. 그래서 상당한 필력이 깃든 문장들엔 읽는 이의 마음을 자연스레 취하게 하는 힘이 있다.

웰빙 시대가 되면서 점차 대중화한 와인은 보통 맛으로 마시고 향에 취한다지만 그것에 덧붙여 그 속에 담긴 문화를 음미해야 제대로 즐긴다고 할 수 있다. 모두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초보자들도 쉽게 와인에 대한 정보와 문화를 알 수 있도록 와인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장은 와인 초심자를 염두에 둔, 워밍업 성격이 강하다. 기본 숙지사항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기보단 와인 고를 때의 주의점, 소믈리에(레스토랑의 와인 담당자)에게 도움 받기, 시음하는 방법 등 초보자가 궁금해할 만한 사항들을 ‘펜 가는 대로’ 풀어놓고 있다.

1장의 말미부터 2장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와인 경매에 대한 것이다. 경매라는 구매 방식은 일반 소매상을 이용하는 것보다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리라 여기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저자는 경매가 오히려 싼 값에 와인을 살 수 있는 방법이라며 적극 권한다. 단 낙찰가격만 지불하면 와인이 내 것이라 생각하면 낭패. 낙찰 수수료 20%를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세계 와인 경매의 쌍두마차,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주관한 세기의 경매들을 소개한 뒤 저자는 본격적으로 와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3장은 제조에 관한 내용이다. 와인을 구성하는 요소의 8할 이상은 포도의 품질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그래서 테르와(Terroir)라고 칭하는, 양질의 포도가 자랄 수 있는 토양·기후 등 자연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유럽 와인이 지역이나 마을 이름으로 명명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하여, 거품 난다고 무조건 샴페인이라 부르면 곤란하다. 프랑스 샴페인 지역산 스파클링 와인만 그렇게 불러야 한다).

뛰어난 토질로 손꼽히는 포도밭 그랑 크뤼(Grand Cru)의 와인은 마을명 없이 오로지 포도밭 이름으로 통용되는 영광을 누린다. 와인 맛의 수호자 오크통과 코르크 마개와 관련된 상식도 알아둘 만하다.

4장에서는 다양한 와인 종류를 살핀다. 검은 포도로 빚는 레드 와인과 청포도로 만드는 화이트 와인을 주축으로 포도 수확시기, 압착방식, 발효법 등에 따라 와인의 맛과 색은 다채롭게 변주한다.

달콤한 맛으로 젊은층에 인기가 많은 아이스와인은 초겨울 첫서리에 얼어붙은 포도로 만든다. 가장 적정한 수확 기온은 영하 7도. 아직 얼지 않은 포도 농축물을 얼음과 분리해 발효시키면 진한 단맛과 깔끔한 신맛이 어우러진 와인으로 탄생한다.

‘귀하게 부패했다’는 뜻의 귀부 와인은 잿빛곰팡이의 힘을 빌어 만든다. 곰팡이가 피어 껍질을 갉아먹으면 포도알은 쭈글쭈글 흉측스레 변하지만 대신 순수한 당분과 향기가 오롯이 들어차게 된다. 이 못난이 포도알들은 2년 이상의 숙성을 거쳐 애호가들을 흥분시키는 고급 와인으로 거듭난다.

‘현대의 디오니소스들’이란 제목을 단 5장은 와인의 맛과 문화를 개척해가는 인물들의 열전이다. 필자가 직접 현지를 방문해 인터뷰와 취재를 한 경우가 대다수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유명 샤토를 찾아가 성주로부터 시음 대접을 받고 나서 묘사한 와인 맛은 저자가 동원한 문학적 수사를 뛰어넘는 생생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인물과 내용을 보강해 별도의 책으로 엮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초심자의 안목을 넓혀 주는 좋은 해설서지만 저자의 관심 수준에 맞추다보니 정작 생활 속에서 와인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소개되지 않아 아쉽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