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힘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이하 <블랙 펄의 저주>) 이후 3년 만에 조니 뎁이 엉뚱한 매력이 넘치는 해적 선장 잭 스패로우로 다시 돌아왔다. 전편에 이어 고어 버번스키(<멕시칸>, <링>)가 다시 한번 메가폰을 잡았고 키이라 나이틀리, 올란도 블룸 등의 배우가 고스란히 시리즈를 이어간다.

<블랙 펄의 저주>는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모티프를 끌어온 단순 소재 영화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유쾌한 B무비풍 블록버스터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뜻밖의 성공에 고무된 제작사 디즈니와 버번스키는 2편과 3편을 동시에 촬영하는 <반지의 제왕> 식 제작을 감행했다.

따라서 <캐리비안의 해적 - 망자의 함>(이하 <망자의 함>)은 완결성을 지녔던 <블랙 펄의 저주>와는 달리 <반지의 제왕> 시리즈 중간 편인 <두 개의 탑> 마냥 이야기의 앞과 뒤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비주류 감성의 B급 유머

3편이 예정돼 있는 탓에 영화는 클라이맥스에서 속편을 기약하며 끝난다. 그렇다고 해서 한 편의 영화로서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개운하게 마무리되지 않는 결말의 아쉬움을 제외하면, <망자의 함>은 나무랄 데 없는 스케일과 재미를 약속한다.

할리우드의 이단아 조니 뎁은 <가위손>이나 <찰리와 초콜릿 공장>류의 판타지 영화에서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는 독특한 개성의 배우다. <망자의 함>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조니 뎁의 영화’라 일컬을 만한 이 영화에서 그는 이제껏 자신이 연기한 모든 판타지 드라마 중에서 가장 빼어난 한 캐릭터를 ‘잭 스패로우’라는 인물에 부여하고 있다.

1편에서 사랑에 빠진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와 윌 터너(올랜도 블룸)의 결혼식 중 갑자기 군사들이 들이닥친다. 동인도회사의 경영자 커틀러 베켓(톰 홀랜더)은 두 사람에게 사형수 잭 스패로우(조니 뎁)를 풀어준 죄로 사형을 언도하고 옥에 가둔다.

그러나 베켓의 목적은 따로 있다. 그는 윌 터너에게 잭 스패로우가 지니고 다니는 나침반을 구해오면 엘리자베스를 풀어주겠다며 협상을 제안한다.

한편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의 선장 데비 존스(빌 나이)는 잭에게 블랙 펄의 선장이 되는 조건으로 과거에 맺었던 계약의 대가인 영혼을 요구한다. 다급해진 잭은 데비 존스의 약점인 ‘망자의 함’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고, 때마침 엘리자베스를 구하기 위해 그를 찾아온 윌 터너와 함께 망자의 함을 찾으러 모험을 떠난다.

한편 엘리자베스의 전 약혼자 노링턴은 터너와 스패로우에게 앙심을 품고 망자의 함을 베켓에게 팔아 넘겨 과거의 지위를 되찾을 목적으로 블랙 펄에 선원으로 잠입한다.

전편이 유령 해적선 블랙 펄과 수수께끼의 해적 선장 잭 스패로우, 그리고 그의 운명의 열쇠를 쥔 엘리자베스와 윌을 둘러싼 비밀을 중심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망자의 함>은 바다 괴물과 밀림, 주술, 식인종 등 흥미진진한 동화적 볼거리에 치중하고 있다.

<블랙 펄의 저주>가 보여주었던 업치락뒤치락 하는 우스꽝스러운 액션 장면은 <망자의 함>에서 보다 코믹하게 재현된다. 고어 버빈스키의 B무비적 감수성은 비논리적인 이야기 구조를 천연덕스럽게 뛰어넘는 여유와 유머를 통해 드러난다. 흡사 주성치 영화를 보는 듯 끊임없이 상황을 뒤틀고 진지한 순간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허를 찌르는 의외의 유머감각은 전편에 이어 속편의 각본을 맡은 <슈렉>의 테드 엘리옷과 테리 로시오의 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선과 악의 잣대로 구분할 수 없는, 비겁하고 약삭빠르면서도 한편으로 정 많고 마음 약한 잭 스패로우 캐릭터는 종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망자의 함>은 스패로우의 엉뚱한 캐릭터에 최대한 초점을 맞추고 영화 전체를 허무개그풍의 유머로 이끌어 나간다. 스패로우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이 오직 스패로우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확장된 지평

후반부, 무인도의 거대한 물레방아 안에서 윌과 잭 스패로우, 그리고 노링턴이 벌이는 싸움은 전성기 성룡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기구를 이용한 슬랩스틱 유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CG)이 난무하는 요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과거로 돌아간 듯한 아날로그적 스펙터클은 신선한 영화적 쾌감을 선사한다.

문어를 얼굴에 얹어놓은 듯한 악당 데비 존스와 조개와 갯지렁이를 온 몸에 뒤덮은 유령 부하들, 그리고 존스가 조종하는 거대한 문어 모양의 바다 괴물 크라켄은 CG가 존재하기 이전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던 과거의 괴수 영화와 모험 영화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주술과 판타지, 유령과 괴물이 난무하는 <망자의 함>은 현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추구하는 이미지의 리얼리티를 배반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멕시칸>과 <링>을 통해 코믹 스릴러와 공포라는 하위 장르를 효과적으로 연출했던 고어 버빈스키는 비주류적인 감성을 주류 영화에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재능을 보여준 바 있다.

불세출의 비주류 배우 조니 뎁과 엇박자 유머로 동화의 상투구를 전복시켰던 <슈렉>의 짓궂은 유머가 극대화된 시너지로 나타난 <망자의 함>은 3편을 기꺼이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음을 몸소 증명하는 유쾌한 모험담이다.

또한 해적이라는 소재가 가져다 주는 낡은 낭만적 이미지를 현대적 유머로 무장시킴으로써 할리우드 영화가 지닌 자산의 크고 넓은 함량을 새삼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장병원 영화평론가 jangping@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