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공포영화. 이 가운데 가장 기대치가 높은 영화는 역시 'J 호러'라고도 불리는 일본 공포물이다. 일본은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낯설고 섬뜩하게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어 언제부터인가 공포영화 속에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 오고 있다.

그런데 'J호러' 말고도 일본만이 갖고 있는 독자적인 장르 영화는 또 있다. 바로 명랑학원물이다.

학원물은 대개 단순히 학교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의미한다. 하지만 폭주족 출신 교사가 문제아 반을 맡는 드라마 'GTO', 왕따를 인기학생으로 만드는 '노부타 프로듀스'에서부터 1969년 일본의 자유로운 청춘을 그린 영화 '69 식스티 나인', 왕따가 영화에서 왕따역으로 캐스팅되면서 벌어지는 영화 '스쿨 데이즈'까지 일본의 학원물은 그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일본 학원물이 장르화된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다양한 소재 발굴 덕분이다. 우리나라 학원물이 대부분 입시와 진로에 대한 고민만으로 소재가 상투화된 데 반해서 일본 학원물은 보다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는 고등학생의 이야기인 영화 '워터 보이즈'나 스윙 재즈를 연주하는 여고생들의 이야기 '스윙걸즈'같이 일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실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들도 일본영화가 지닌 소재발굴의 힘에서 나온 영화들이다.

특히 스윙걸즈는 워터 보이즈로부터 시작된 대책없이 발랄한 코믹 학원물의 완결판 격으로 2004년 개봉당시 일본 아카데미에서 5개 부문을 석권할 만큼 초히트를 기록했던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여름방학기간 동안 수학 보충수업을 받는 토모꼬와 13명의 낙제생들이다. 이들이 지겨운 수학 수업을 땡땡이(?)치고자 자신해서 밴드부에게 도시락을 날라 주는 임무를 맡게 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더운 여름 기차까지 타고가서 밴드부에게 전달한 도시락이 그만 상해버린 것. 요즘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대규모 식중독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유일하게 도시락을 먹지 못한 밴드부의 외톨이 심벌즈 소년은 여학생들에게 밴드부를 대신해서 야구부 응원에 나가줄 것을 종용하고 여학생들은 자신의 죄과를 치르기 위해 악기를 배워나간다.

결국 소녀들이 일취월장해서 보람찬 합주를 하면서 영화는 끝이 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심벌즈 소년의 혹독한 수련을 통해 악기에 정을 붙인 소녀들은 예기치 않게 밴드부원들이 모두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밴드부에서 ?겨난다. 그런데 떠밀려서 배운 스윙재즈가 중독성이 있을 줄이야.

스윙의 맛을 알아버린 소녀들은 자진해서 빅밴드를 결성하기 위해 악기구입에 나선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은 바로 턱없이 비싼 악기. 돈을 벌기 위해 소녀들은 별에 별 황당무계한 알바를 시작하고 점점 스윙의 세계에 깊이 빠져든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신기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극중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로도 일취월장하는 소녀들의 합주 실력이고 또 하나는 닭살이 돋을 만큼 건전하고 순진한 이들의 태도다.

도무지 일본 여고생 하면 떠오르는 원조교제의 고갸르 (高+Girl, 유행에 민감한 일본의 여고생을 지칭)는 찾아볼 수 없다. '스윙 걸즈'의 걸들은 하나같이 순수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울 뿐이다.

시골 소녀들인 걸 감안해도 이들에겐 현실에 대한 고민도 반항도 없이 완벽히 체제순응적이다. 방학기간 동안 수학공부를 강요해도 원치않는 밴드부 입단을 강요해도 조금 무기력하거나 무관심할 뿐 격렬한 항의도 불만도 없다.

지극히 심한 계층과 세대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 영화 '스윙걸즈'는 일종의 추억과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소녀들이 1930년대 유행했던 빅밴드 시절의 스윙재즈에 빠져드는 것도, 전혀 성적 방종도 타락도 없는 건전성을 지닌 것도 모두 위협적인 10대를 경험한 기성 세대의 바람이 투영된 설정은 아닌 건지. 왠지 과거로 돌아가고픈 일본의 무기력한 복고주의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쨌든 영화는 재미있다. 여름방학에는 특히 강추!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