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조팝나무

태풍이 지나갔구나 싶었는데, 다시 갑작스런 큰 비에 곳곳이 물난리이다. 평소 현대 첨단 문명의 상징으로 여겼던 지하철역에 황톳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가는 장면을 TV에서 보니 사람이 예측하고 대비한 재해 방책들에 대한 한계를 느낀다.

반면에 자연에 사는 생명들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가 싶다. 우쭐대는 인간들보다는 어찌보면 더 많은 변화에 맨몸으로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음에도 스스로 조절하고 살아남고 복원해가는 모습을 생각하니 말이다.

꼬리조팝나무도 그러하다. 주로 물가나 습지에 살고 있으니 사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나 물에 노출될 위험은 더 클 듯싶은데 언제나 여름이면 아름답고 풍성하게 꽃을 피워내며 이곳저곳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어디 사람의 눈길뿐인가.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잠시 비 갠 사이로 날아드는 벌들을 유혹하고 감싸는 향기로움도 갖추고 있다.

꼬리조팝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작은키나무이다. 우리나라엔 물이 많은 곳 근처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북쪽으로 올라가서 백두산 가는 길 습지에서도 발견되며, 더 멀리 러시아의 아무르강가에서도 만날 수 있다.

키는 사람 허리쯤에 오고 크게 자라면 어깨 높이까지 뻗는다. 보통은 덤불처럼 모여 자라니 한 그루씩 나누어 키를 재보는 것은 좀 어렵다.

여름이 시작할 무렵부터 피기 시작하는 분홍빛의 꽃송이들은 작은 꽃들이 모여 원추모양의 꽃차례를 만들어 피고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여름 내내 볼 수 있다. 잎은 길쭉한 피침형에 가장자리엔 잔톱니들이 나 있다.

사실 꼬리조팝나무는 조팝나무와 한 집안 식구이면서도 꽃 색깔도, 꽃차례도, 잎의 모양도, 사는 곳도 사뭇 달라 마치 무관한 사이처럼 보이지만, 작은 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려다 보면 동그란 5장의 꽃잎과 많은 수술들 그리고 옛 술잔처럼 얄팍한 꽃밭침통의 구조가 같다.

이렇게 꽃들을 자세하게 관찰하면 왜 두 나무가 한 집안인지 이해가 되고, 꼬리조팝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만하다. 조팝나무 집안 식구들 중에 좀 유별나게 긴 꽃차례를 가진 모양 때문에 ‘꼬리’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이다.

꼬리조팝나무를 알고 나면 아름답고, 향기롭고, 특히 흰꽃들이 많은 여름철에 아주 특별하게 분홍색 꽃들을 많이 피워 개성까지 갖춘, 이 식물을 왜 아직까지 몰랐을까 싶기도 하다.

귀하지 않고, 쓰임새도 두드러지지 않은 탓이기도 하지만 실은 우리가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고운 우리꽃나무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저러한 기록엔 용도와 다른 이름 등의 내용이 있지만 읽어보면 대개 조팝나무에 대한 설명을 함께 붙여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다만 모양도 예쁘고, 색깔도 곱고, 은은한 향기마저 풍기니 정원수로 쓰면 좋을 듯하다(다만 건조한 곳은 피해야 한다). 또한 비가 오더라도 벌이 찾아들 만큼 꿀이 풍부하니 유익한 밀원식물임에도 틀림없다. 어린 잎은 나물로 먹을 수도 있다.

이 나무의 영어이름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Queen of the Meadow’ 즉 초원의 여왕이다. 이번 여름에 여행을 떠나면 반도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는 옛 우리땅의 벌판 습지에 지금도 의연히 여왕처럼 피고 있을 이 꽃나무를 다시 한번 만나봐야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