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아름다운 풍광과 역사 간직한 백두대간의 한 켠

▲ 대야산 용추폭포.
백두대간 분수령을 껴안고 터를 잡은 문경은 대미산, 조령산, 회양산, 대야산, 주흘산 등 1,000m 내외의 험한 산들이 솟아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악 도시’다.

조선 시대엔 한양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의 중심에 있어, 예부터 ‘문경’이라 하면 ‘새재’를 연상케할 정도로 문경새재의 명성은 높았다. 그러나 문경엔 이에 못지않게 역사적 의미와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곳이 많다. 문경 남서쪽의 가은읍 주변으로 떠나보자.

바위 벼랑과 물줄기가 조화 이룬 진남교반

중부내륙고속도로의 문경새재 나들목으로 나와 3번 국도를 타고 점촌(문경시)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진남교반(鎭南橋畔)이 반긴다.

문경새재를 적시고 흘러온 조령천이 영강에 몸을 섞는 이 일대는 높다란 바위 벼랑과 물줄기가 어우러진 풍광이 빼어나다. 강 위로는 가은선 철도, 그리고 3번 국도의 구교와 신교가 나란히 놓여 있어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라는 평을 듣고 있다.

진남교반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는 강가 벼랑에 세워진 고모산성. 삼국시대 처음 세워진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엔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진격하던 왜군의 주력 부대를 군사 한 명 없이 만 하루 동안 진격을 지연시켰을 정도로 험준한 철옹성이다.

진남교반 주차장에서 성을 향하다 오른쪽 성벽 아래로 100m쯤 들어가면 흔히 ‘토끼비리’라 불리는 토천(兎遷)이 나온다.

영강 비탈면에 아슬아슬하게 나있는 이 길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 중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었다. 고려 왕건이 견훤에게 쫓길 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길을 찾아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길손들의 발길에 바닥이 닳고닳아 반들반들해졌다.

토천에서 되돌아 나와 복원된 진남관의 문루를 통과해 성벽에 올라서면 절벽을 휘돌아 가는 영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성안엔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이었던 예천 삼강나루의 주막과 문경 영순주막을 복원한 초가 두 채가 있다.

주막거리를 지나면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성황당이 나타난다. 당집 앞의 불에 탄 느티나무는 가은 출신 의병장인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 1858~1908) 선생이 1896년 일본군과 고모산성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의 흔적이다.

성황당 유래에 전하는 전설 한 토막.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이 고을 처녀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과거에 급제한 뒤 한양의 양반 처녀와 결혼하고 옛일을 잊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경상도 관찰사가 돼 이곳을 지나던 선비는 옛 생각이 나서 처녀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목숨을 끊은 뒤였다. 선비는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성황당을 세웠다고 한다.

▲ 진남교반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고모산성.
▲ 탄광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는 문경석탄박물관.

고모산성을 내려와 철로자전거를 탈 수 있는 가은역으로 가보자. 수십 년 전만 해도 문경은 손꼽히는 탄광 도시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탄광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94년 가은의 은성광업소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자 문경의 경제는 급속하게 쇠퇴해버렸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가은선 철로를 달리는 철로자전거는 문경시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야심작. 몇 년 사이에 제법 인기를 끌면서 주말이면 가은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1코스(진남역~구랑리역), 2코스(진남역~불정역), 3코스(가은역~먹뱅이(구랑리역)) 이렇게 3개의 코스가 있다. 모두 왕복 4km로 40~50분쯤 걸린다. 한 대(성인 2명, 어린이 2명 기준)에 10,000원. 진남역 (054) 550-6478.

가은 왕릉리의 석탄박물관(054-571-6426 www.coal.go.kr)도 필수 코스. 폐광된 은성광업소 자리에 조성한 이 박물관은 무연탄을 캐던 광부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실제 갱도를 이용한 230m의 체험로엔 광부의 채탄 작업을 재현하고, 갱내 사무실, 갱내 점심식사, 그리고 탄광의 붕괴 순간 등 실감 넘치는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둘러보는 데 1~2시간쯤 걸린다. 어른 1,000원, 학생 500원. 주차는 무료.

하트형 기암으로 유명한 용추폭포

석탄박물관을 나와 922번 지방도를 타면 길은 이강년 선생의 생가를 지나 대야산(930.7m)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분수령인 대야산 둘레엔 넓은 반석과 크고 작은 폭포가 즐비한 계곡이 많다. 이중에서 동쪽의 선유동과 용추계곡은 경관도 수려해 한여름에 하루쯤 머물면서 무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용추계곡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계류를 따라 10분쯤 오르면 용추폭포가 반긴다.

이 폭포는 상·하단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상단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아래의 깊게 파인 소(沼)는 사랑의 상징인 하트 모양이다. 암수 두 마리의 용이 이곳에서 승천했다는 전설은 신비감을 더해준다. 폭포 바위벽엔 ‘용의 비늘’이라는 흔적도 남아있다.

용추폭포 위의 넓은 암반지대에서 산길을 따라 20분쯤 올라가면 달 그림자가 선경을 빚어낸다는 월영대(月影臺). 대야산 본격 산행이 아니라면 이곳까지만 다녀와도 더위는 충분히 잊을 수 있다. 주차장에서 월영대까지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청소비 어른 1인당 500원, 주차비 2,000원.

교통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 나들목→3번 국도(문경시 방면)→ 진남교반→ 가은→ 922번 지방도(괴산 방면)→ 문경석탄박물관→ 선유동→ 용추.

숙식
진남역 주변 강변엔 문경민박(054-552-1050), 강가의 아침(054-553-5758), 강이 있는 풍경(054-572-3375)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잡고기매운탕(2~3만원)을 차리는 식당도 많다. 4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진남매운탕(054-552-7777)이 유명하다.
용추계곡엔 돌마당(054-571-6542), 벌바위가든(054-571-5691), 대야산청주가든(054-571-7698) 등 민박을 겸한 식당이 여럿 있다.



▲ 영남대로 옛길 중 가장 험난한 구간이라는 토천.

글·사진 민병준 여행작가 sanmin@empal.com